'현재의 타인'이 아닌 '미래의 나'를 향하고 있나요
"66점, 그럭저럭 적당합니다"
스마트워치가 아침에 보낸 메시지입니다. 지난밤 수면 성적이에요. 보통 워치는 '주의가 필요해요(Needs attention) - 그럭저럭 적당합니다(Fair) - 잘 잤어요(Good) - 훌륭해요(Excellent)'의 네 단계 메시지를 보냅니다.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요렇게 받고 있어요.
저는 만성 불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침대에 들 때면 주로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도 또 어떻게 잠이 들 수 있을까, 자다가 몇 번 깰까. 그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자다가 깨는 순간 다시 또 걱정을 장착하게 됩니다. 심각한 건 아니고 아주 일상적이며 가벼운 걱정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또.. 라며 약간 실망합니다. 일어나는 시간이 꽤 일정한 편이라, 총 수면 시간은 잠드는 시간에 매우 의존적입니다.
이게 제 하루의 마지막과 시작의 작은 감정 패턴이에요. 걱정하며 잠들고 실망하며 깨고. 굳이 글로 적으니 심각해 보이지만 큰 감정들은 아닙니다. 아침 식사를 진짜 좋아해서 금방 즐거운 마음으로 전환됩니다.
잘 때 패턴을 알기 위해서 워치를 꼭 착용하고 있는데, 잘 잤다 혹은 훌륭하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 당황스럽습니다. 지난날들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거든요. 초반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 위주로 받았었는데 워치가 제 패턴을 학습한 거 같아요. 그렇게 축적한 데이터로 이 정도면 훌륭하다, 여전히 주의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혈류와 심박, 산소포화도, 체온 등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매번 제시하는 거 보면 분명 의미 있는 결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잠의 질이 낮았기 때문에 푹 잤다, 잘 잤다는 감각이 없고 애초에 뭘 기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루만이라도 정말 푹 자고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다면 내 수명의 몇 년과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주 생각하는데요, 생각해 보니 애초에 모르는 감각을 갈망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긴 쉬워도 그다음을 생각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걸 잘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이런저런 면에서 지금 이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착하고 말아요. 그리고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덮어놓고 갈망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길 바라죠.
잠을 잘 못 자는 건 제게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전처럼 회사 출근을 걱정하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도 없고요. 그래도 여전히 잠을 잘 자고 싶다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시도합니다. 영양제도 먹고 좋다는 것도 먹고 커피도 끊고요.
우리는 부자의 감각이 뭔지 모르지만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날씬해진 감각이 뭔지 모르지만 살을 빼고 싶어 합니다. 자유로운 감각이 뭔지 모르지만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고 독립적인 감각이 뭔지 모르지만 독립적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어딘가에 닿았을 때 원래의 내 감각과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아직 멀었다는 잠재적 결론을 내고는 실망하며 다 관두거나 열심히 질투합니다.
내가 갈망하는 감각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이미지에 덧씌운 단편적이고 멋진 한두 단어가 아니라, 나를 중심에 두고 입체적-구체적이면서 논리적이지 않은 문장들로 상상해 보면 조금 더 도움이 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제 워치의 판단대로 가끔은 잘 자고 가끔은 주의가 필요한 날들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실망하며 일어나는 건, 제가 잠을 잘 잔다는 감각 그리고 그 영향을 너무 드라마틱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제 요가 선생님은 자주 'Grounding-Orientation-Edge'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동작을 시작하면서 그라운딩을 언급하는 거 보니, 각자에게 안정적인(어떤 근육도 특별히 더 무리하지 않는 상태) 자세를 먼저 만들라는 말인 것 같아요. 그다음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방향성, 오리엔테이션에 대해 언급하고, 절대 자신의 포즈를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세에 익숙해지면 엣지로 가보라고 해요. 아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그 선까지 최대한 가보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선을 넘지 말라고 하는데, 1, 2분 정도 후에는 두 번째 엣지로 가보라고 조언합니다. 추상적인 말들이지만 동작을 하면서 들으면 내 근육이 그에 맞게 반응합니다.
저는 제 수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라운딩이 없는) 상태로, '고개만 닿으면 잠들어서 아침에 상쾌한' 남들처럼 잘 자고 싶다고 (오리엔테이션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의 엣지가 아닌 이상적인 상태를 바라보면서 실망합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삶에 대한 태도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평생의 고민 또 하나는 여유인데, 여유롭다는 감각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이건 여유로운 게 아니라는 생각만 가득하죠. 회사를 관두고 지금 하는 일이 절반 이상으로 줄었는데도 전보다 더 여유롭다는 감각을 하지 못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한 것 같아요. 조금 더 내 삶을 기반으로 감각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