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아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기꺼이 각자 긴장한다

by 오월

너: 그룹의 다른 친구들 vs. 너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나: 오 두근두근.


너: 어떤 순간에, 강렬한 한 순간이기보다는 몇 번의 시도로, 너와 나는 진지함과 지루함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비슷하다는 걸 알아낸 것 같아.


나: 음?


너: ‘이 분위기를 깨면 어쩌지‘ 싶은 말을 내뱉었을 때 서로 ‘모르겠다, 어렵다’ 혹은 하품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그 얘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들으려 하는 태도?


나: 무슨 말인지 알겠다. 확실히 그런 면에서 편안해.


너: 둘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과연 너를 더 잘 알게 됐나 생각해 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 그런가? 네 말을 듣고 보니 수다 이전에 알던 너와 지금의 너.. 그 간극이 크진 않은 거 같다. 내가 알던 네 모습에 살이 붙어 더 풍부해지긴 했어.


너: 내가 나를 알아가고 있는 건 확실해. 수다를 떨면 어떤 자극이 나를 요기조기 간질간질 찔러대거든. 팟캐스트나 독서 그리고 나 역시 글쓰기로 그 자극을 더 강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살짝 긁어 없애지.


나: 서로가 어떤 걸 가장 강하게 받아들이는지, 쳐내는지 알 수도 없으니 서로 의도할 수 있는 것도 아냐. 그러고 보면 그룹 수다에서 그런 자극이 덜하네.


너: 왜 그럴까? 막상 다른 멤버들과 너에 대해 알고 있는 수준이 대단하게 다르지도 않더라고, 몇 문장을 덧붙일 수는 있겠지만 말이야. 살아가는 환경도 마찬가지고.


나: 우리는 고등학교 이후로 서로에 대해 업데이트된 게 참 없다는 얘기를 했었지.


너: 그때의 우리에 역할만 입혀졌고 막상 하는 일이 뭔지도 몰라.


나: 만나면 학창 시절에 웃겼던 상황에 대한 농담을 주고 받아. 그것밖에 할 수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너: 서로 예민한 질문을 절대 하지 않아. 그 친구가 그걸 선택한 건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우리가 어떤 정보를 줄 게 있는지 탁자 위에 얹을 기회도 안 만들지.


나: 여전히 전형성에 갇혀있는지 머리로는 삶의 다양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모습을 한 친구는 불편할 수 있을 거라고 단정하는 거 같아. 그니까 나 역시 그 모습을 ‘불편함’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어두고 있다는 걸 들키는 거지. 막상 지도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움.. 알고 보면 나 그 트랙에 있지 않은 게 불편한가?


너: 네가 몇 번 ‘대부분의 경우에 상대의 조건을 판단하지 않고 감정을 담지 않더라’고 했잖아.


나: 맞아. 친구가 고민을 얘기한다면 ‘어려움이 있구나’를 넘어서 ‘불쌍하다’ 이렇게 내 감정으로 끌고 오진 않아. 친구가 샤넬백을 들고 오든 에코백을 들고 오든 ‘볼 일이 있구나’ 정도 말고 더 생각하는 게 없어. 이쁘다, 생각을 하기도 하겠지만 그 친구에 대한 긍부정 감정에 영향을 크게 받냐고 묻는다면 글쎄.. 저 친구가 샤넬백이 있구나, 와 씨 더 친해져야지! 에코백 구려, 헐 차단! 이러지 않거든 진짜로. 그렇게 감정을 쓸 만큼 에너지가 충만하지도 않고.


너: 나 포함 90% 이상의 사람들이 그런 맘일 거야. 근데 그들이 ‘샤넬백을 맨 나 vs. 에코백을 맨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에 차이가 있을 거’라는 맘도 안고 있으니 불균형이 생기는 듯. 너를 보는 나,는 꽤 사회적이고 무심한데 나를 보는 너, 에는 매우 개인적이고 예민해서 온갖 기호를 해석하게 돼.


나: 그룹으로 만날 때 그 예민한 맘들이 모여서 피곤한가? 근데 그 자리에서 남의 텐션을 느낀 적은 별로 없어. 그냥 각자 자기 텐션에 지칠 뿐.


너: 필터를 좀 더 벗어봐도 괜찮다는 확신은 어떻게 확인하는 걸까? 직접 던져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나: 고등학교 막 졸업하고 한 친구가 ‘오월아, 너는 아빠가 안 계셔서 불편한 부분이 있어?’라고 물었어. 나는 아웃팅 하는 거 말고는 별로 불편하지 않거든. 그래서 그런 맥락으로 답했는데 그때 그 친구는 이미 내가 ‘불편할 거야’라고 생각한 거 같아. 그때는 우리가 아직 불편과 불쌍의 차이를 잘 몰랐던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자기를 내 상황에 대입했을 때 생각이 많아졌나 봐. 나의 대답은 그 의도에 맞아떨어지지 않았고 그걸 눈치챌 수 있었어. 그렇다고 그 기대에 충족하기 위해 불편한 척할 수도 없고 얘기가 흐지부지 됐는데, 그 친구는 아마 ‘불편한가보다, 더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지 않았을까.


너: 오호 그거 인상적인 에피소드다. 그래, 상대가 불편하다는 단정. 질문에도 답에도 '너는 상처가 있어. 나는 그 상처를 건들려는 건 아니라'는 걸 설명하려고 애를 쓰지만 상대를 보호하는 건지 스스로를 변호하는 건지 헷갈리네.


나: 필터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문답이 별론가 싶기도 하다. 그럼 뭐가 있을까..


너: 네가 최근에 스토리에 대한 화두를 자주 꺼내잖아. 감정만 가득하고 스토리 구성이 되지 않는다면서.


나: 응 맞아.


너: 우리가 기승전결의 구조만 스토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딸의 동화책을 읽어보니 혼자 달려요- 둘이 달려요- 셋이 달려요 뭐 이런 점층적 구성도 있고 속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구성된 것도 있고 그렇더라.


나: 오 그거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야!

매거진의 이전글동생은 삐쳤고 나는 지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