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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Jun 12. 2016

쉼표가 있는 여행

나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여행사진들......

    가족과 여행을 할 때면 늘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빡빡한 일정을 준비한다. 한 곳이라도 빠트리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듯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까지도 찾아다닌다. 사진도 엄청 많이 찍는다. 2001년에 처음 디지털카메라를 장만한 이래, 15만 여 장을 찍어서 컴퓨터에 남겨 둔 것만 사만삼천 여 장이 넘는다. 그래도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찍은 사진인지 대개는 기억을 한다. 그중에는 매일 지구를 돌아 서녘으로 향하는 태양이 수억 년을 물들인 검붉은 노을도, 진솔한 삶의 땀방울들이 켜켜이 묻어나는 시장 골목도, 역사의 숨소리들을 전하는 옛 건물들도, 원시 자연을 간직한 열대우림 속 기차여행도 들어 있다. 가족의 환한 웃음, 때로는 눈물도 함께...... 내가 봐도 멋진 사진들도 꽤 있다.


    그런데, 볼 때마다 '참 좋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사진들은 푸른 잔디밭 위에 하늘 높이 서있는 에펠 타워나 소낙비 같은 시원한 물방울로 온몸을 적시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아니다. 전 세계로부터 여행을 나선 온갖 인종을 만날 수 있는 맨해튼의 타임스 스퀘어나 뮤지컬과 펍들이 걸음마다 유혹하는 피카딜리의 황홀한 밤거리도 아니다. '저 때 정말 좋았어'라고 추억하게 되는 사진들은, 우리 여행의 동선을 함께 따라온 사람이 아니라면, 꽤 알아주는 눈썰미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알듯 말듯한 곳에서 여행의 가방을 잠시 내려놓았던 곳들에서 찍었던 것들이다.


    한 편의 아름답고 멋진 영화를 홍보할 때, 특별히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뇌리에 깊이 남을 장면들을 골라 영화의 포스터를 만든다. 영화 포스터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포스터 속 사진이 대신한다. 영화 속,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 속에 멀리서 잡은 주인공들의 모습이거나 배경은 흐릿하게 날려버린 가운데 주인공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사진들이다. 영화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영화 속 한 장면으로 관객을 데려가기에 충분하다. 포스터의 사진들은 영사기 속의 필름처럼 계속해서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며 보게 되는 포스터의 사진을 통해서 영화를 다시 본다. 감동적인 영화였다면 가슴속에 잔잔히 새기며 돌아간다. 나의 여행사진들도 그렇다.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비록 디지털 앨범이지만, 멈추어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는 사진들은 예외 없이 나만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거의 다 멈추어 있거나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들이다.


    "멈추면 보이는 것들"을 쓴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여요. 내 생각이, 내 아픔이, 내 관계가 멈추면서 그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것들로부터 휩쓸려 살아야만 했던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잘 보여요.'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멈추면 보이는 것들을 모르기 때문은 아니었을 듯하다. 단지 그들은 쳇바퀴를 멈추기 어려운 다람쥐처럼 매일의 일상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를 멈추고 내려서는 것이 너무나 어렵거나 두렵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갑자기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무엇을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람을 보면서 웃다가도 정작 내게 그런 시간이 주어지면 허망하게 보내버리지는 않는지...... 길을 걷다가도 가끔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도 구름도 나무도 버스도 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지 않았다면, 멈추어 서는 일은 어색하기 그지없을 수 있다. 꼭 가봐야 할 곳들, 먹어야 할 것들, 잠잘 곳들만 나열해 놓은 영혼 없는 여행책자들을 난 좋아하지 않는다. 참고를 하지만, 그 책 속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면 그 책은 나만의 여행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일 뿐이다. "프로방스에서 느릿느릿"이라는 여행 수필집에서 작가는 프로방스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그가 소개하는 프로방스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옮겨 다니며 시간에 맞추어 이걸 보고 저걸 먹는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서 찍은 듯한 사진 속에 보이는 먼 산의 배경과 작은 건물들과 사람들 하나하나를 설명해주는 듯하다. 그렇게 멈추어 있는 장면 속에서 나는 혜민 스님도 만나고 프로방스에도 간다. 그리고 멈추어 있는 나의 사진들 속에서 나의 추억들을 새롭게 여행한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서 내 아이들을 보았다. 200mm 렌즈를 통해 멀리서 보았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수평선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한낮의 풍경은 그림처럼 조용했다. 물결이 살랑이는 바다와 가끔씩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이 아니었다면, 난 그 그림 속에 빠졌을 것이다. 몇십 혹은 몇백 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오래된 나무 기둥을 의지하고 숨을 참았다. 바닷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듯한 망원렌즈 속 피사체들을 멋지게 담아내려면 최대한 숨을 참아야 한다. 그렇게 멈추었을 때, 내가 평생을 두고 사랑할 사진들이, 추억들이 내게로 온다. 그렇게 멈추어진 순간에는 카메라 렌즈가 아이들의 작은 웃음소리도 담아낸다.


    그때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고, 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봐야 여행이 되고 공부가 되는 줄 알았다. 피에타의 조각을 만나고, 최후의 만찬을 보아야만, 증명사진을 찍듯이 그렇게 다녀야만 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서둘러야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 후회가 담긴 사진들을 볼 때면 가족에게 미안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나마 어딘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쉬고 있는 사진들을 보면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그런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십 년이 지난 후에야 그 여행의 의미를 깨닫는다. 아내와 딸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아내와 딸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둘이 다시 마주 앉아 사진들을 꺼내어 볼 때, 아내와 딸은 그날 그 자리의 느낌을 기억하리라 믿는다. 내가 바라보았던 그 느낌처럼...... 둘은 엄마와 딸이며, 친구이며, 또 같은 여행자였으리라. 그날의 여행이 힘들었다고 딸은 투정했을 수도 있고, 엄마는 딸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걸음마 떼던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도 딸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빠는 듣지도 못한 그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날 저기 둘이 앉아서 어깨를 두드리고 팔다리를 주무르며 마음을 나누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음이 중요하다. 어릴 때 썼던 그림일기처럼......



    내가 가장 아끼는 여행 사진들 가운데 하나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뒷모습만이 보인다. 베니스 앞바다의 산 조르지오 마조레의 부두 옆에 앉아 있다. 그곳에서 누구나 다 증명사진처럼 찍게 되는 산 마르코 광장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보인다. 그들은 어느 곳도 애써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그냥 쉬고 있다. 그리고 그들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행에 지친 모습이 아니라, 잠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어디론가 다시 급하게 이동할 것 같지 않다. 시원한 물도 마셨고, 가끔씩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열어보는 여행책자도 던져 놓았다. 아들은 누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딸의 손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지만 그건 그냥 제스처인 듯하다. 양산으로 가린 햇볕을 가린 아내의 눈에는 맞은편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었을 것이다. 우린 그날 거기 꽤 오래 앉아 있었다. 몇 시까지 다시 모이라고 소리치는 여행 가이드가 없고, 다 함께 배를 타기 위해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단체여행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4분 쉼표를 찍는 대신 한 마디를 다 쉬어 가는 온쉼표를 찍었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쉬고 있었다.



    광장의 귀퉁이에 살짝 숨어 앉은 작은 식당......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서 찾아간 곳에 우리가 첫 손님이다. 아직 저녁이 이르다. 페르시안 블루의 천장이 높고 오렌지와 하얀색 테이블보가 식욕을 자극하는 동화 같은 식당이 오로지 우리 차지가 된다. 그곳에서 시간은 멈추고 우리는 추억을 만든다. 막다른 골목의 어귀에 노란 전들을 안팎으로 장식한 또 다른 식당에서도 우리는 꽃향기로 장식한 테이블에서 향긋한 저녁을 즐긴다. 늘 빨리 먹는다고 아내에게 핀잔 듣는 식사처럼 후딱 지나가지 않는다. 메뉴를 공부하기 전에 음료수를 먼저 주문해야 한다. 하루 종일 걷느라 힘들었던 다리를 주무르며 기다리노라면 졸음이 살살 오기도 한다.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다시 느려진다. 늘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그 세상에서 잠시 밖으로 나와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천천히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난 후에야 보다 완전한 나만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내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내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방 속에 잠시 집어넣으면 그때서야 나는 내 인생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그러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입으로 들어간 오만 끼가 넘는 식사 가운데 단 한 번의 식사를 언제 어디서 누구랑 먹었는지 기억하게 된다. 세상의 시계를 잠시 멈추어 놓고,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들로 초등학교 때 환등기로 보았던 슬라이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 중에 즐기는 한 가지 재미난 버릇이 있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그날 여행 중에 가장 높이 올라갔던 곳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곳이 하늘과 맞닿은 곳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런 곳이라면 나의 쉼표가 가장 쉼표다워진다. 사람들의 소리도, 자동차들의 소리도, 심지어는 감미로운 음악소리조차도 멀리 아래로 들리는 곳에서는 인생이 저절로 기도가 된다. 런던의 세인트 폴이나 파리의 노트르담과 달리, 밀라노의 두오모처럼 조용히 하늘을 걸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발걸음은 라르고(largo)가 된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는 곳에서 황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멈추어 있거나 천천히 움직이는 사진 속에서만 되살아나는 여행이다.


    딸이 자전거를 타고 강의실로 가다가 부딪혀 넘어져서 발을 다쳤다. 몇 주간 석고붕대를 하고 있다. 더운 여름에 혼자 고생이 많으리라 생각하면 자다가도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동안에 조금 천천히 쉬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인생은 가끔씩 쉬어가는 것임을 배우기를 기도한다. 젊어서는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쉼표가 없는 노래는 부르지 못한다.






아래 링크는 같은 매거진, "내 마음의 길"의 이전 글입니다.

https://brunch.co.kr/@6901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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