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대체 뭐길래
아주 어린 나이에 엄마 아빠는 매일 욕설이 난무하는 싸움을 반복해 집안 분위기를 얼음장같이 만들곤 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인지하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는 둘 다 똑같으니 그만하라고 중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는 마냥 큰 소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오가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불을 덮어쓰고 조용히 울곤 했는데 그때 나를 발견한 아빠가 엄마를 공주님 안기 하여 빙빙 돌면서 우리 싸우지 않았다고 말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빠는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 와서 잔소리를 했고 화가 나면 시발련, 개 같은련아 네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등의 난생처음 듣는 욕은 기본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집 안에서든 아이가 아파 데려온 병원 앞에서든 물건을 던지는 등 언어폭력을 당연시해 심리적 불안감을 극대화시켰고 아무렇지 않게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큰 목소리가 더 높아지면 집 밖 슈퍼까지도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심하게 때린 적은 없지만 쓰고 있는 모자를 치거나 주먹을 들고 위협을 하기도 했다.
나와 동생마저도 뺨을 맞은 적이 있다. 어릴 적 나에게 집이란 곳은 긴장감이 있었달까 아빠가 오면 잔소리를 듣거나 혼나는 게 무서워 자는 척을 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걸 보는 게 싫어 억지로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중에서 내 머리가 좀 크고 제일 싫었던 건 아빠가 술만 먹고 오면 엄마에게 하늘 같은 남편이 왔는데 옆에 와서 술을 따르라거나 드러누워 양말을 베껴라고 말하며 안 하면 전기 다 차단시킨다고 두꺼비 집을 내리며 히스테리를 부린 일인데 술을 먹지 않아도 평소에 물 가져와라, 휴지 가져와라 혼자서 알아서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처럼 당연하게 엄마를 부려 먹었고 나중에는 나와 동생에게도 그랬다. 집에서 왕처럼 말을 안 들으면 소리를 지르며 집요하게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내가 성인이 될 때쯤 아빠가 어릴 적 나와 엄마에게 내가 돈 벌어오는 기계냐고 한 말이 떠올랐다. 문득 그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일주일 하루 쉬면서 내가 출근하기 싫지 않냐 물으면 싫은 티 안 내고 오히려 일하는 게 재밌다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거라고 말하며 책임감 있게 하루도 출근을 거르지 않던 아빠의 모습 우리 세명을 먹여 살리려 아침부터 나가 본업을 마치고 대리운전까지 한 뒤 해가 뜨기 전 들어와 몇 시간 쪽잠 자고 다시 출근하던 아빠 모습을 떠올리니 우리가 없었다면 이 정도로 힘들게 살진 않았을 텐데
평생 일만 하다 급성기 뇌경색에 걸리고도 회사에서 잘릴까 수술도 못하고 퇴원을 말리는 의사를 뒤로하고 무릎을 다쳐 신경이 망가져 위험해도 회사에 가야 한다며 출근을 하던 아빠에게 난 아침저녁으로 인사 한 번 하지도 않았고 가지고 싶은 게 생겼을 때만 연락해 이거 사달라 용돈 달라 한 마디 한 게 다였다. 다녀오세요. 다녀오셨습니까 한 마디 뭐가 어려워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을까.
아빠의 어깨에는 내가 무너지면 우리 가정도 무너진다는 감히 내가 느낄 수도 없는 어떤 무거운 짐이 올라가 짓누르고 있었고 머릿속엔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에 대출 카드비까지 어떤 불안함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을지 상상도 안 간다. 그래서 아빠를 보면 몸도 마음도 성치 않은데 최근에 판 집 처음 가진 우리 집이라고 좋아하던 모습이 선명한데 어쩔 수 없이 그 집을 팔아야만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아빠의 표정과 우리에게 다해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아주지 못하는 자식들만 남아 씁쓸해 보이는 게 너무 짠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엄마 아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남편과 싸워서 심한 말을 듣거나 상처를 받았을 때 엄마는 더 심한 일도 많이 겪고 더 한 말도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 버틴 걸까 궁금했다. 비참해지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럼 한 결 나아지고는 했다.
우리를 위해 몸과 청춘을 희생하고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한 건 알았지만 어떤 시간들을 버텨왔을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내가 아는 과거의 장면들만 떠올려봐도 엄마가 얼마나 스트레스받고 힘들어서 몰래 숨어 울었을지 짐작이 갔다.
도대체 엄마가 뭐길래 우리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기 싫어서 버티고 우리가 뭐라고 멋진 인생이 될 수 있었던 기회와 수치심까지 버려가면서 애지중지 키워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면서도 엄마의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후회와 슬픔으로 가득 차 가슴이 한편이 휑 했을까
그래도 우리 눈을 바라보면 그새 힘들던 거 다 까먹고 힘차게 다시 한번 더 해보자며 살아간 엄마 의지하고 싶던 딸이 못되게 굴어 속상할 때도 힘들어하는 모습 보며 같이 마음 아파하고 목소리가 이상하면 무슨 일 있을까 걱정부터 쏟아내는 우리 엄마 내 존재 만으로 행복하다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보답할 수 있을까
내가 잘 사는 게 엄마의 보상이라는데 나는 왜 그렇게 많은 걸 요구했는지 평생 못 갚을 부모님의 사랑을 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우리 엄마 아빠처럼 한 없이 아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곧 있으면 뼛속 깊이 알게 될 자식 사랑이 무섭다.
나도 이렇게 이뻐하는데 내 아들은 또 얼마나 이뻐해 줄까 한 순간도 빠짐없이 미안하고 고마운 엄마 아빠 부모란 대체 뭐길래 자식을 이렇게 울게 만드는가 나의 아가 시절 온 우주였던 엄마 아빠 이제 내가 우주가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