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눌리던 소녀

불안을 피헤치다.

by 한영옥

아까 분명히 잠에서 깬 것 같은데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저쪽으로 눈을 돌리니 검은 형체가 보인다. 왜 이렇게 몸이 무겁고 내 맘대로 안 움직여 지는지 도와달라는 말도 안 나온다. 아직 나는 꿈속을 헤매이고 있다. 검은 물체가 내 몸으로 파고 드는 느낌에 더 안간힘을 써 본다. 다시 힘을 뺐다가 힘을 다시 꽉 주어 벌떡 일어나 볼려고 하지만 또 다시 제자리다.


식은 땀도 나고 온 몸이 굳은 듯한 느낌으로 깨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든다.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어 보고 뒤척여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굳었던 몸은 살며시 눈이 떠지면서 몸의 감각이 하나씩 돌아온다. 또 가위에 눌렸다. 선잠을 잤는지 아니면 걱정하다가 잠이 들었는지 무서움에 휩싸여 내 몸으로 파고드는 이상한 느낌은 자주 일어났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처음 가위를 눌려보고 중학생 때는 가위눌리는 경험이 밥 먹듯이 자주 일어났다. 가위에 눌리게 되면 의식이 약간은 깨어 있어 내가 지금 가위 눌리고 있는데 깨어나지 못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럼 또 눌렸네 하면서 이것을 얼른 벗어나기 위해 안감힘을 쓴다.


가위에 눌리게 되면 자꾸 검은 사람 같은 형체가 보여 내 몸 속으로 자꾸 들어올려고 한다. 그럴 때는 롤러코스터 타고 내리막길을 슝하고 내려가는 듯한 소름이 온 몸에 돋는다. 그 느낌은 내 몸을 강간당하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모르는 남자한테. 유령 같은.

가끔은 저 멀리 귀신도 보인다. 눈을 감으면 다시 사라지고 눈을 뜨면 다시 보이는 형체가 있다. 난 가위를 눌리고 있는 도중에 몸은 못 움직이고 있지만 나의 의식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해보는데 몸이 잘 안 움직여지는 것 뿐이다. 생각도 할 수 있고 눈도 감을 수 있고 벌떡 일어 날수도 있다. 적어도 생각으로는.


청소년 때 가위 눌림이 지속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빈도는 줄었지만 이어졌다. 하루는 친구네 집에서 잤는데 가위가 눌린 것이다. 친구네 집이 형편이 어려워져 가게 옥상 콘테이너에 살고 있었다. 안방에서 친구는 침대 위에서 나는 방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가위에 눌려 머리를 땅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린 처녀 귀신이 친구가 누워 있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악 소리를 지르며 눈을 돌리는데 콘테이너 방 문 앞에 (그때 여름이었는지 문을 열어놓고 잤다) 작은 몽달 귀신이 서있었다. “엄마야” 두 번 놀라면서 지금까지 가위 눌리면서 이렇게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고 난 얼음이 되었다. 없어지지 않는 귀신의 형체들을 난 숨죽여 조용히 보고만 있었고 조금 있다가 가위가 풀려 잠에서 깨어났다. 진이 쫙 빠지고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포였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친구에게 말도 안하고 한참을 눈에 그려지는 그때의 그 순간이 다시 또 재현 될까봐 두려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가위가 눌릴 땐 무언가 힘든 고민을 하고 있으면 더 나타났고 선잠을 자거나 할 때도 가끔 눌렸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는 빈도 수가 확 낮아져 다행이었지만 아주 가끔 눌리기도 하고 그런다. 그래도 그때에 비해서 가뭄에 콩나는 듯한 횟수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의 기가 많이 허했던 것 같고 마음 속의 불안과 걱정이 가위눌림 현상으로 무의식적인 힘듦이 표출되었던 것 아닌가 싶다.


가위 눌림에서 보이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냥 허상일 뿐이다. 내 마음 속에 그려진 실제로 현존하지 않는 것들이 무의식 위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때 보단 지금이 더 단단해 져 있고 어른이 되어 있기에 그런 허상에 짓눌리지 않는다. 많이 단단해진 나를 보다듬고 위로하여 본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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