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기 전에 가스 밸브가 잘 잠겨져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여 본다. 확실히 잠겼는지 확인하여 안심이 된 후에야 현관문을 나선다. 현관문을 닫고 삐리릭 소리가 들리고서도 손잡이를 몇 번이나 돌려가며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한다. 그래야 우리집 앞에서 발걸음을 뗄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나가서도 안심이 된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강박증적 증상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화장실 수건 걸이에 수건을 걸을 때 색깔을 구별한다. 빨간색이나 노란색 수건은 절대 걸면 안 되는 것이 내 철칙이다. 빨간색은 피를 볼 일이 생길 것 같고 노란색은 세월호 사건 이후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평온한 색깔 위주로 수건을 쓰고 수건을 걸어두어야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신발은 늘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하고 이뿐만이 아니라 모든 물건들이 놓아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삐뚤어져 있으면 가지런히 바로 잡는다. 빨래를 빨래걸이에 널 때에도 남편 것부터 차례대로 4번째 걸이에는 되도록이면 내 빨래를 걸어둔다. 네 번째 숫자 4에 안 좋은 의미(한자로 죽을 사)를 부여하여 네 번째 자리에 남편이나 아이의 빨래를 널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가지런히 빨래를 걸어두면 편안하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냉장고 안도 내가 넣었던 그 자리에 넣어두고 요구르트는 정렬하여 줄 세워 두어야 한다. 모든 만물이 제자리에 정렬하여 반듯하게. 이것이 나의 일상이고 철칙이다.
조금은 많이 피곤한 일상이다. 나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엄마의 영향도 크다. 엄마는 늘 옛날 미신들을 귀가 닳도록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문지방에 앉지마라. 베개 세워두지 마라. 상 모서리에 앉지 마라. 침대에 노란 이불 깔아두면 부자 된다. 달력은 병원 것 가져오지 말고 은행 것 가져와라. 은행 것 가져와야 돈 들어 온다. 시험날 미역국 먹으면 시험 잘 못 본다. 개 키우지 마라. 우리 집은 개랑 안 맞다. “ 등등 객관적인 증거도 없는 그냥 말장난 같은 미신 이야기 듣느라 귀가 닳는 줄 알았다. 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미신들을 믿으시고 종종 얘기해 주신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전화를 확 끊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지만 아이러니 하게 이런 이야기를 실천하고 있다. 노란 이불 깔아두면 돈 들어온다고 해서 결혼할 때 아주 샛노란 이불을 사왔다. 그리고 달력도 은행 것 아니면 절에서 준 달력을 받아온다. 약국이나 병원 것을 우연히 받게 되면 그냥 버린다. 베개는 세워있는 것만 봐도 소름끼쳐 얼른 눕혀 둔다.
나의 중학교 시절의 일이 생각난다.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시험기간 이었는데 머리를 감으면 시험에서 미끄러질 것 같아서 (시험을 잘 못볼 것 같아서) 3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머리감고 개운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시험을 쳤더라면 더 잘 보았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시험을 잘 못 볼것 같은 마음이 더 두려워서 머리를 감지 않고 3일을 버텼다. 마지막 3일째에는 기름이 좔좔 흘렀지만 그래도 시험을 잘봐지는 느낌 때문에 견뎌냈다.
그리고 그때 시험기간 동안 컴퓨터용 사인펜을 교회에서 받은 것이 있었는데 왠지 교회에서 받은 기운때문이라도 시험을 잘 볼 것 같아서 3일 내내 사용하였다. 그런데 그 사인펜은 컴퓨터용 사인펜이 아니었고 모양만 비슷하여 답지에 마킹은 컴퓨터로 읽어내지 못하여 0점처리가 되었다. 선생님이 급하게 오셔서 사인펜을 확인하고 이것을 사용하면 안되다고 하셨고 그래도 다행히 마킹체크를 다시하여 내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로는 정확하게 컴퓨터용 사인펜이라고 적힌 검은색 사인펜만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때 선생님이 가까이 오셔서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셨는데 내가 머리 감지 않은 것을 눈치채신 느낌이어서 얼마나 뻘쭘하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 뒤로는 다행히 머리는 감지만 시험 당일 아침에 감지 않고 저녁에 미리 감았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도 아닌데 이런 것에 연연하는 나를 보면 갑갑하기도 하다. 나도 미신 이야기 안 믿고 털털하게 살고 싶다. 터덜터덜. 반듯하게 정리 하지 않아도 되고 몇 번이나 가스불, 문단속 하지 않아도 되고 베개 세워서 써도 되고, 빨래 아무렇게나 널어도 되는 질서정연한 내 머릿속과 안녕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 마음만 그럴 뿐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강박증 증상들과 함께 가기로 해 본다.
굳이 안 고쳐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일은 아니니까 내 일상에 함께 하는 친구로 사이좋게 지내보자. 대신 여러 번 확인 할 일을 한번만 정확히 확인하고, 깔끔한 것이 보기에는 좋으니 정리도 운동 삼아 즐거이 해 본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엄마 이야기 잘 새겨듣고 좋은 마음으로 실천해 본다. 엄마의 마음은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니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본다.
강박증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것 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큰 문제 없고 괜찮다라는 마음에 집중해보자. 이 또한 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