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압력밥솥

불안을 파헤치다.

by 한영옥


“티비 소리 좀 줄여. 시끄럽게 해두면 애가 집중을 못하잖아.”

티비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쇼파에 누워 티비를 보는 아빠에게 엄마는 일침을 날린다. 티비 소리는 조금 줄여지지만 내 방문 조금의 틈을 비집고 소리가 새어들어 온다. 티비 소리를 더 줄이라는 엄마의 끊임없는 말소리가 계속 내 귓가에 맴돌아 뇌신경을 타고 머릿 속을 쿡쿡 찌른다.


“엄마 목소리가 더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내가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른다. 티비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내려고 하는 하이 톤의 파장을 전달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더 거슬린다. 엄마 아빠의 소음으로 인한 투닥거림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조금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엄마의 혼잣말 투덜거림이 시작된다. 하나하나 동작과 행동, 생각들을 계속 중얼중얼 토해내는 엄마의 말놀이가 온 신경을 건드린다. “어휴, 이렇게 더럽네. 이렇게 닦아서 깨끗하게 해놔야지. 이건 또 왜 여기 있는 거야. 왁스로 닦아야 깨끗해져. 아효!! 힘들어. 깨끗하게 청소해놔야 맘이 편하지. 아무리 얘길해도 안들어. 네 아빠는. 이거 여기다가 두지 말라고 했는데 또 이래 놨네. 정말. 아이구 내가 못살아.!!” 분명 조용히 좀 해달라고 얘기 했는데 방문을 쾅 닫아도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려온다.


내 속안에 무언가가 꿈틀댄다. 조금 있으면 터질 것 같은 압력밥솥. 나도 김 확 내면서 분출하고 싶은데 아직 칙칙 소리만 내면서 김만 뿜어내고 있다. 내 안의 압력밥솥은 김을 잘 분출해 내지 못하여 속 안에 머금고 있고 조금 있으면 밥이 타버려 누룽지가 생길 듯하다. 김을 확 분출하여 밥이 고르고 윤기 있게 익도록 해서 고소한 향기를 내어 밥맛이 좋아지게 해야 하는데 분출기가 막혀있으니 꽉 막힌 압력으로 밥솥이 터져 금방이라도 뚜껑이 뻥 터져 하늘로 날라갈 듯 하다.


김을 어떻게 잘 분출하는지 몰라서 그냥 꾹꾹 눌러 담는다. 말해봤자 소용없으니 그냥 내 방안의 내 책상에 앉아 내 마음을 삭히고 마는 것이다.


엄마는 톡톡 쏘는 말투에 마침표는 없는 말을 하시는 경상도 분이시고 아빠는 말수가 별로 없는데 말 한마디에 호탕한 목소리를 가진 충청도 분이시다. 난 그 속에서 내 이야기를 온전하게 드러내어 분명한 표현으로 말하기란 어려웠고, 말 습관도 우물쭈물 이었다. 그렇다고 엄마 아빠의 말에만 고분고분 순종하는 스타일도 아닌 나는 억울하거나 힘들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우선 눈물부터 나온다. 훌쩍 훌쩍 울음을 쏟고 나면 그래도 소나기가 내리 듯 마음이 시원해진다. 그러면 내 마음의 억울함은 한층 풀리면서 그래도 내 언어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엄마의 도돌이표 잔소리로 짜증과 화를 다시 느끼며 방문을 닫고 확 들어가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20살 전 아직 미성년자 시기에는 엄마 아빠의 보호 속에 있어서 엄마 아빠의 소리들에 많은 반항을 못하지만 20대가 넘은 나는 독립된 인격체가 되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우리 엄마는 왜 그럴까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첫소리가 “왜” 이다. 왜 전화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먼저이지만 그래도 조금 부드러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가 대학원 세미나를 다녀오면서 1박2일 동안 엄마와 나는 서로 아무 연락이 없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하였는데 엄마에게 돌아오는 소리는 “왜” 라서 서운함이 극에 달하였다. 그래서 엄마에게 정확하게 내 표현을 하였다. “ 엄마, 연락 없다가 내가 전화했는데 왜라고 하닌까 너무 서운하고 듣기 싫어” 하닌깐 엄마는 웃으면서 “경상도 사투리야 .하 하 “ 하고 이야기 하신다. 경상도 사투리 라닌깐 그동안 살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이해가 확 되면서 서운함이 사르르 눈 녹듯이 풀렸다. 내 이야기를 분명히 전달하면서 그에 대한 반응을 들으니 술 먹고 난 후 콩나물 해장국으로 해장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일부분에 속하고 엄마의 잔소리는 여전하여 내가 전화하고 엄마가 계속 말하고 있으면 “엄마 알았어.” 하며 그냥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끊어지는 연결 속에 엄마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끝나지 끝나지 않는다.


이젠 다 커서 결혼하여 내 집 살림을 하고 있는 우리집에 오면 엄마는 자기 살림인 듯이 살림살이를 시작한다. 또 시작이구나 하며 나는 그냥 내 할 일을 하지만 내 신경의 전파는 엄마를 향하고 있다. “이거 이렇게 하면 어떻게. 깨끗이 닦아야지. 어휴, 여긴 청소를 안 했구만. 이렇게 살림하면 어떻하나. 이건 이렇게 해 두면 안되고….” 엄마를 본 반가움도 잠시 어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살림살이가 엄마가 편한 쪽으로 다 바뀌어 있다. 수세미 자리, 설거지통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국자 자리, 냉장고 속 김치 놓는 자리며 내가 정리 정돈의 강박증이 있는데 나만의 자리 였던 것들이 모두 바뀌어져 있다. 내 안의 압력밥솥은 또 꿈틀꿈틀 폭발하지 못하고 부글부글 하고 있다.


엄마가 가자마자 난 나의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로 원위치시키는 일을 한다. 마구 투덜투덜 대며서 물건에 분풀이 하면서. 그러다가 엄마가 해 둔 삼계탕 한 냄비를 본다. 엄마가 해준 삼계탕 맛은 끝내 준다. 압력밥솥이 끓다가 치지직 소리를 잘 내며 연기를 치이이익 하고 뿜어낸다. 김이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끝까지 다 나간다. 엄마가 시장가서 닭 사오고(차도 없으신데 버스타고 걸어서) 우리 집까지 들고 오시고 오셔서 이곳 저곳 청소하면서 닭을 푹 삶아 영양가 있는 재료들을 넣고, 사먹는 한방 삼계탕 뺨치는 그런 영양 듬뿍 삼계탕 한 그릇은 내 기력을 끌어올려 준다. 압력밥솥의 김이 다 나가고 뜸들이는 시간. 고소한 밥 익혀지는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긴다.

인제 남은 시간 10분 ~ 삼계탕 다리를 뜯으며 엄마의 정성을 한땀 한땀 먹고 나서 밥을 조금 말아 우러나온 닭 국물에 닭죽으로 먹는다. 속이 확 풀리고 엄마가 집까지 무사히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 지는 시간이다. 드디어 밥이 다 완성되어 찰지고 윤기나는 밥을 본다. 내 마음은 다 식어 내려 갔다. 그리고 엄마가 집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에 “영옥아 ! 네 몸 관리 잘하고 밥 잘 챙겨먹고 종화 이서방 잘 챙기고 잘지내.” 하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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