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지하철이라는 편리한 교통수단을 너무 잘 이용했다. 여기서 저기까지 2시간 걸려도 끄떡없을 만큼 잘 탔다.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고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도 하였다. 멍하니 사람들 타고 내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어도 시간이 잘 지나갔다. 어떠한 두려움도 올라오지 않고 아주 편하게 말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커피 자판기에서 일반 믹스 커피를 뽑아서 한잔 먹는 그 달콤함은 나를 아주 기분 좋게 해 주는 일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의 20대 때 즐겨 타던 지하철이 아이를 낳고 지독한 소화불량이 온 30대 중반에는 불편한 교통수단이 되어 버렸다. 지하철을 타면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확 튀어 내려야만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불안에 떨면서 지인에게 전화해 내가 도착할 때까지 전화통화 하자고 하면서 마음의 안정거리를 붙잡아야 했다.
왜 그런지 정확하게 인지를 하지 못했다. 그냥 몸이 허약해져서 이런 것 또한 힘들구나하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있으면 그 안에 탄 사람들과 지하라는 공간에 나의 온 에너지를 모두 다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공포의 순간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지하철역에 내려오는 첫 계단에 발을 디딛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었다.
2018년 1월 2일, 심리적인 어려움에 정신과를 찾아 상담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나는 불안이 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불안이 심하지 않았어도 지금은 불안이 심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지금은 지하철을 거의 안탄다. 몇 번 탔는데 짧은 거리를 딸과 꼭 함께 타야 할 때만 탄다. 나 혼자 지하철 역으로 첫 계단은 절대 밟지 않는다. 무섭고 두렵다. 나 혼자 그 곳에 들어가는 순간 숨이 점점 막혀와 어지럽고 힘들어 주저 앉을 것만 같은 공포가 밀려오는 것 같은 상상을 한다. 물론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 상상은 더욱 더 지하철을 두려운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다.
이번 년도 설날 아침 시댁에서 제사를 지내고 남편이 회사로 상황근무를 가야 할 상황이 생겼다. 딸과 나는 친정 수원까지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택시를 이용하면 약 3만원이 나온다. 택시값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남편의 차로 미금역까지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미금역에 내리니 설날 아침이라서 그런지 택시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으로 이동하면 10정거장 정도인지라 딸과 함께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었다. 딸과 함께 들어가면 내가 지하철을 못 타는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게 잘 탄다. 완전히 편안한 마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지하철 잘 타는 엄마가 된다. 여유 있게 커피 믹스 한잔도 뽑아 마셨다. 나의 심리를 더 안정시켜주는 한 잔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수원 친정에 무사히 도착했다. 딸과 함께 온 덕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함께 탈 수는 있지만 혼자서는 절대 못타겠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이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 그 해답은 찾지 못했다. 나 혼자서는 지하철을 못타지만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여 보겠다는 결심도 선뜻 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지하철 타는 일이 매일 내가 해야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매일 한 정거장씩 늘려가며 매일 타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방법을 알려주셨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다. 가끔의 불편함 때문에 매일의 두려움을 맞닥드리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가끔의 불편함을 감수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싸고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텐데 나는 비용을 더 지불하고 택시를 이용하거나 좀 더 시간이 오래걸리는 버스를 이용한다. 그리고 지하철로 이동해야만 하는 먼 거리는 굳이 가지 않는다.
심리적인 불안과 공포가 분명 나를 가로막고 있다. 이것과 함께 살아갈지 내가 극복해야 할 지도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