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가 들린다. 둘이 싸우는 소리가. 아빠가 술을 많이 먹고 늦게 들어 오셨다. 엄마는 화가 많이 나셨고 토라지셨다. 나는 그냥 자는 척하며 조용해지길 기다린다. 그래도 오늘은 빨리 끝나고 두 분 다 잠자리에 들어서 다행이다.
오늘은 왜 또 싸우지? 엄마, 아빠의 의견 차이가 많았다. 어릴 때 이것을 이해하고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엄마,아빠가 싸우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 커진다. 시끄러운 소리가 싫었고 텔레비전 크게 틀어 놓은 소리조차도 거슬렸다.
그냥 모두가 다 입다물고 조용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3학년 사춘기 때, 가출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모범생이었고 무서워서 그런지 선뜻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다행이다.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 근처 어느 한적한 마을, 시골 식당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까지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가는 상상도 했다. 그러면 조용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20대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와 엄마는 늘 투닥거리며 아빠의 큰소리가 나야 엄마가 입을 다물고 조용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분에 못이기겠는 날에는 아빠의 큰소리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화풀이와 잔소리가 이어졌다. 난 문을 쾅 닫는다. 지겹게 싸우네.
내가 30대가 되던 해에는 새벽에 갑자기 큰소리가 나서 빛의 속도로 일어나 안방으로 달려가니 벌써 엄마에게 손찌검을 한 후 였고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멈추는 듯한 쪼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 숨을 천천히 쉬며 딱딱해 질 것 같은 심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했다. 내 침대에 돌아와서도 진정시키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내가 40대인 지금도 엄마, 아빠는 똑같다. 서로 투닥거리면서도, 의지하며 각자 성실하게 잘 산다. 지금은 엄마, 아빠의 인생이 이해된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사이가 좋고 싸우는 일이 거의 없다. 말을 잘 들어주고 성격 좋고 성실한 남편인지라 내가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현재 불안증을 앓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엄마, 아빠가 잘 싸웠고 거기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던 나의 어린시절이었다. 늘 왜 그런지 이유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나에게 질문을 던지니 바로 답이 나온다. 긴 시간을 궁금해 했었는데 말이다.
<눈물바다 서현 글, 그림 / 눈물바다 그림책의 그림 일부이며 두 공룡이 싸우는 장면>
엄마 아빠의 잦은 다툼, 그 속에 오가는 시끄러운 소음, 과격한 언성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주눅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결혼하려고 남편을 우리 집에 소개시켜주러 왔을 때 엄마는 아빠와 싸운적이 거의 없다는 말을 남편에게 전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다못해 풋하고 웃음도 나왔다. 싸운적이 없다고. 그럼 내가 보고 들은 장면과 소리들은 무엇인가.
엄마, 아빠의 싸움과 언쟁에 관해서는 깊이있게 대화를 나누어 본적이 없고 내가 굳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꺼낼 생각도 못하였다. 아마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장면이고 이야기 였을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나밖에 없는 부모님이다. 이렇게 성실하고 착실하게 살아온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그 덕에 나도 편하게 살고 있다. 불안과 함께 가는 삶이지만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도 담아 따뜻한 말 건네는 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