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안해.” 하면서 문을 쾅 닫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 말이다.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더 올라온다. 난 계속 화가 나 있고 엄마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다. 설움이 복받쳐 눈물이 나온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점수를 잘 받았다. 그래도 몇 개는 틀렸다. 엄마에게 달려가 자랑하니 “잘했어. 다음에 다 맞아와.”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힘이 쫙 빠진다. 노력하여 얻은 점수인데 엄마의 성에 차지 않는 듯 했다. 실망감이 들었지만 어린 마음에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여름 날, 엄마와 이야기 하다가 내가 화가 많이 나서 옆에 있던 선풍기를 발로 확 차버렸다. 그 정도로 나는 화가 차 올랐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랬는지 생각은 잘 안나지만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와 내가 하고도 놀랐다. 선풍기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을 때 고장이 났을까봐 씩씩대면서도 걱정되었다. 엄마도 놀라는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넘어가 주셨다.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니 엄마에 대한 불만은 더 커졌다. 엄마는 욕심도 많고 일만 알고 마음을 다독여주지 못하고 잔소리만 많았다. 이런 엄마와 대화하는 일에 항상 화가 올라왔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정작 말을 하면 잘 안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무슨 걱정이 있으면 엄마에게 말하게 된다. 울면서 엄마에게 폭 안기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못 들어서 이야기하고 화를 내며 끝날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되는 일은 엄마에게 얘기해야 속이 풀렸다. 이건 무슨 앞 뒤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싫은데 하게 되는 일이다.
내가 20살 후반에 엄마가 아빠로 인해 굉장히 가슴 아파 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엄마를 안아주며 아빠를 이해하는 말을 하며 엄마를 다독이고 위로해 주었다. 엄마는 아이처럼 나에게 안겨 눈물을 훔치셨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엄마는 인제 영옥이가 날 위로해 준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난 그저 엄마의 슬픈 마음이 이해되었을 뿐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와 참 많이도 투닥거렸다. 드디어 결혼하여 따로 사니 훨씬 편했다. 조용하니 좋았다. 엄마에게 전화도 자주하지 않아 결혼하고 1년은 엄마가 서운해 했다. 전화해도 즐겁지 않으니 전화를 안하게 된다.
엄마의 공감과 이해를 원했다. 잔소리만 늘어 놓는 것이 아닌 “영옥이가 많이 슬펐겠다. 속상했겠다. 엄마도 마음이 아프네. 하지만 영옥이는 잘 할꺼야. 지금도 잘하고 있고.” 이런 응원의 말을 듣고 싶었다.
지금의 내 딸에게는 딸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는 말부터 시작한다. 나도 잘 되지 않았지만 재작년 치료 센터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아 아이의 마음 공감부터 하고 제한을 설정한다. 먼저 “이거 하지마.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부터가 아니라 “종화가 많이 속상했겠다. 엄마라도 속상했을 것 같아.” 하는 마음부터 먼저 읽어 주는 것이다. 혼나고 지시 사항부터 먼저 듣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마음부터 공감해 주는 것은 중요하다. 이 사실을 엄마를 통해 난 느끼고 있었다.
아직도 엄마의 전화나 문자를 받을 때 화가 불쑥 올라오지만 철이 좀 들어서 그런지 엄마의 이야기들이 사랑의 속삭임으로 생각이 된다. 모든 얘기가 나를 생각하고 걱정해 주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엄마의 잔소리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엄마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고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생각이다. 엄마에게 수용에 대한 목마름이 있지만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의 서툰 표현을 이제는 이해하기에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 예쁜 마음으로 인해 우리 딸에게도 이런마음이 전이되었으면 한다. 엄마와 딸은 유난히 섬세하게 연결되어진 존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