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니 38kg, 다시 살찌는 설움

불안이 피어나다.

by 한영옥


아이를 출산하고 100일 정도 지났던 후이다. 기침이 계속 되고 소화불량이 심해 한의원 가서 한약을 지어먹었다. 한 재를 다 먹어도 별 차도가 없어 용을 넣고 또 지어 먹었다. 진전이 없었다. 내과에 가서 위내시경을 해보기로 하였다. 검사결과 역류성 식도염으로 나왔다. 이 병이 그렇게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병인가? 약을 먹어도 약의 효과는 없고 증상만 더 해갔다.


여름 되니 몸이 더 허해진다. 언제쯤 괜찮아 지려나 매일같이 고통 속에 시간은 흘러갔다. 임신과 출산으로 찌운 몸무게가 저절로 쭉쭉 빠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른 채로 20대 몸무게로 돌아가 있었다. 몸무게는 빠져서 다행인지 계속되는 소화 불량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과 즐거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쨍쨍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아이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일을 보러 갔다 와야 했다. 지하철을 탔는데 이상한 느낌이 든다. 긴장되고 숨이 잘 안 쉬어 지고 쓰러질 것 같았다. 조금만 견디어 보기로 했지만 더 이상 못 참고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튀어 내렸다. 출구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나가야 했다. 여기를 무조건 탈출해야했다.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았다. 이 역은 출구까지 왜 이렇게 긴지 미칠 지경이었다. 출구를 나왔다. 살았다. 숨이 쉬어지고 조금 더 안정을 찾았다.


잘 참는 성격 탓에 볼일을 다 봐야 했다. 택시를 타고 가서 일을 보고 나니 더 기운이 없었다. 결국 아빠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나 좀 태워서 집에 데려다 달라고, 지금 힘이 없어서 집에 못 가겠다고. 아빠 차에 실려 병원을 들리고 집에 도착하니 안정 되었다.


소화불량을 겪은 3년 동안은 몸무게가 널뛰었다. 살빠지는 속도에 공포감이 느껴졌다. 살이 빠지기 시작하면 한 주에 2~3킬로씩, 순식간에 10킬로 이상이 빠지면 종이 한 조각 서 있는 힘으로 온 힘을 다해 버터야 했고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살빠지는 현상이 더 심해져 최하 38킬로를 찍고 멈춘 적도 있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어 날씨가 온화해지면 살들은 조금씩 회복되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그 다음해에 10킬로를 찌운다. 그래도 힘겨운 소화불량은 지속된다. 먹을 것이 없어서 못먹는 게 아니라 먹을 게 있어도 못 먹는 현실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결국 대학병원 소화기 내과에 가서 종합 검사를 해 보기로 하였다. 암이라도 걸렸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걱정과 불안으로 온갖 신경을 썼다. 아이도 너무 어린데 어떡하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종합검진을 마치고 결과 들으러 가는 날까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 무심한 듯 “별 이상은 없네요. 다 정상이셔요. 식도염도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니시고요. 약 지어 드릴께요. 드시고 다음에 뵈요.” 너무 다행이었다. 아픈 것은 싹 다 나은 느낌에 집에 가는 길에 약 먹으면 괜찮겠지하는 마음이었다. 약은 소화제와 신경안정제였다. 딱 두알. 이렇게 아픈데 이 약으로 되겠나 싶을 정도였다.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고생했던 3년 중 마지막 일년은 최고로 아팠다. 암 걸린 사람도 이렇게 아플까 하는 마음이 매일 올라왔다. 서울대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데 병명은 없으나 탈수될 수 있으니 영양제 수액을 맞고 가라고 하였다. 주사실에는 온통 갖가지 병들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수두룩 하였다. 이때 생긴 어지러움증이 지금도 계속 된다. 그리고 머리를 감을 때 머리를 수그리면온 피가 쏠리는 듯이 두통이 너무 심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느 날은 자고 있는데 작은 형체의 검은 사람이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꿈에서도 이 손 잡고 따라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들었다. 손을 힘껏 뿌리치고 눈을 확 떴다. 아기 저승 사자 같았다. 따라가면 죽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평생을 살면 어쩌나 두려움이 늘 따라 다녔다. 이 시기에 아이와 원활하고 건강하게 상호작용을 해주지 못하였다. 원래 발달이 느린 아이지만 할 줄 아는 언어라고는 5세까지 엄마, 아빠, 물줘가 다였다.


몸이 너무 아픈 나머지 대학병원 약과 병행할 몸이 극도로 아픈 사람들이 가는 특이한 한의원 한 곳을 소개 받았다. 상담과 치료 방법이 독특한 곳이었다. 주로 암걸린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하였다. 원장님과 상담을 하는데 나는 병이 있는 환자가 아니라 신경쇠약이라고 하였다. 상담받고 침도 맞고 원기옥이라고 등의 척추를 따라서 그리고 가슴 앞쪽라인을 따라서 뜨거운 적외선이 나오는 돌로 따뜻하게 해 주는 치료를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차츰 몸이 회복되어 갔다. 어느 정도 회복 되어 3년이 지나고 2018년의 해를 맞이 하였다. 그런데 나의 심리가 좀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것 같았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 심리가 이상하니 병원을 좀 가봐야겠다고 하니 잘 생각했다고 하였다.

< 불안 , 조미자 글/그림 , 불안 그림책의 한 페이지>


아플 대로 다 아프고 나서였다. 버스를 타고 지나던 길에 우리 집과 한 정거장 되는 거리에 있는 신경정신과 병원 창문에 소화불량이라는 큰 글씨가 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주 지나던 길인데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주저 없이 병원을 찾았다. 상담을 하니 우울보다는 불안이 높다고 하였다. 아침에 한번만 약을 복용할 수 있게 지어주셨다. 약을 복용하고 나서부터 나는 잘 먹기 시작하였다. 빠졌던 살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잘 먹으니 행복감도 느껴젔다. 아 !! 드디어 살았다. 그동안 잘 먹지 못했던 치킨, 피자, 햄버거, 밀가루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되니 감사한 나날이다.


그런데 소화불량은 급속도로 호전되어 점점 더 식욕을 부추겼다. 약 몇 알에 이렇게 잘 먹을 수 있다니? 그 의사 용하다 용해. 약을 성실하게 복용했다. 잘 먹을 수있게 되었는데 점점 살찌는 일이 스트레스이다. 식단조절하고 운동하고 천천히 많이 씹어 먹고, 탄수화물 줄여야 하는 다이어트의 기본 원리는 잘 알고 있다. 맛있는 고칼로리 음식을 본 순간 깨끗이 잊고 먹는 그 순간에 맛있음과 즐거움에 집중한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2018년도부터 난 토해내는 것 없이 아주 잘 먹고 있다. 그리고 살이 꾸준히 계속 찌고 있다. 약의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사 선생님께 말하니 운동하라고 하셨다. 연예인들 얼마나 필사적으로 운동하는지 아냐면서. 이건 나를 두 번 상처받게 만드는 말이었다. 이것 말고도 의사와의 상담이 나를 상처받게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 의사에게 상담 가기 전에 긴장이 올라왔다. 이번엔 무사히 얘기하고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을 상담하고 참았던 설움이 터졌을 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여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 좀 더 유연하고 나를 공감해 줄 수 있는 의사를 원했다.


이번에 상담 가서 살찌는 스트레스에 관해서 이야기 하니 약이 식욕을 부추길 수 있기에 음식 먹는 횟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하셨다. 불안은 못 먹게 만들지만, 불안도를 감소시키는 약은 반대로 긴장을 늦추니 식욕을 돋울 수 있다고 하셨다. 식단 조절은 내 의지에 따라서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운동을 시작했다가 금방 신경을 덜 쓰면 넘치는 식욕에 살은 금방 불어난다. 더 이상 찌면 위험 수준이다. 빨간 불이 켜졌다. 벌써 5년이 지났다. 정신과 약을 복용한 후 5년동안 늘어난 몸무게는 나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불안으로 작용한다.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또 몸을 상하게 하면 안된다는 결심이다. 이번 년도에는 매일 걷고 하루 세끼 적당량의 식사로 식단 조절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삶을 살겠다. 비록 또 실패하더라도 노력하여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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