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떼어지질 않는다. 말 한마디가 안 나온다. 고개만 끄덕인다. 두 시간 동안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한 채 듣기만 하다가 웃고만 있다가 먹기만 하다가 일어섰다. 이제야 입을 뗀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한다. 나에 대해 어느 한 사람 물어봐 주지 않고 자기들 얘기 하기에 바쁘다. 그렇다고 남 탓만 할 상황은 아니다. 난 술자리만 가면 왜 잘 입이 떼어지질 않는 거지?
어렸을 때부터 새침떼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린아이 이지만 말이 적은 아이였다. 좀처럼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먼저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제서야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니 친구 사기귀가 쉽지가 않았다. 그저 꿋꿋하게 내가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하고 또 잘해냈다. 그러나 나는 집에 오면 수다쟁이가 된다. 엄마한테 이 얘기 저 얘기 하느라 엄마가 좀 귀찮아 한다. 그래도 조잘댔다. 엄마가 가장 편했으닌깐.
어느 날, 친적 집에 모여 친척 오빠, 언니, 동생들하고 같이 노는데 난 그저 거실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계속 이러고 있으니 우리 친 오빠도 아닌 첫째 외삼촌 둘째 아들인 사촌 오빠가 “너도 같이 놀자.” 고 얘기를 건네주어 바로 일어나 같이 놀기 시작했다. 함께 놀 수는 있었다. 첫걸음을 떼고 첫마디가 어려워 그 무리 속에 끼어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단짝으로 같이 놀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친척집은 잘 따라가지 않았다. 이렇게 말 없이 착실한 모범생으로 한 두 명의 친구와 단짝을 이루어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시절이 되니 관계형성은 더 어려웠다. 학교 친구들이 그냥 두려웠다. 술자리를 가면 난 얼른 벗어나고 싶어서 몇 번 참석하다가 결국에는 피해만 다녔다. 당연히 엠티 가자는 제안에 거절할 이유를 찾아야 했고 만들어 내야 했다. 거절하고 안 가면 또 외로워 진다. 나는 끼지 못했다는 생각에. 다른 나의 즐거움으로 대체를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나도 함께 하여 잘 어울리고 싶었다.
그러나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짝 친구와 가족들, 수학을 가르치는 수학과외에서는 술술술 말이 잘 흘러나왔다. 꼭 이중 인격자처럼.
이런 내가 중학교 수학 기간제 교사 1년을 하는 동안에 아이들과 친밀 관계를 이루고 관계 형성에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어른인 선생님들과는 소통을 힘들어 하였다. 회의 시간만 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여전하다.
그래서 1대1 과외가 편했다. 이 일을 직업으로 삼고 이어 나갔다. 조금 얘기하고 자신감을 찾고 싶을 때에는 스피치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말을 잘하고 싶고 유연해 지고 싶어서 선택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사교적인 모임만 가면 내가 편하지 않는 모임만 가면 입은 잘 열리지 않고 긴장된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인간관계는 늘 한정적이고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건강한 인간관계가 이루어 지지 못했다. 늘 외롭기도 하였다.
지금은 나이도 들고 아줌마가 되어 그런지 그래도 곧 잘 말이 나온다. 나도 무리 속에 끼어든 모습이 보인다. 많은 무리를 만들지 않지만 어쩔 때는 내가 주도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까지 한다. 사회생활은 하지 않기에 그래도 편한건지 그랬더라면 난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들 대하기가 편해졌다.
조던 스콧 작가의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보았다. 처음에는 그림이 어두워 별로 끌리지 않았는데 그림책 심리테라피 과정을 듣는 것이 있어서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나 처럼 어린시절 말이 나오지 않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학교에서 발표시간에 입이 아예 꼼짝도 안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저 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 돌아와 아빠는 말하지 않아도 발표를 잘 못했는지를 아신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강가로 간다. 강을 따라 걷는다.
조용한 곳에 아빠와 단둘이 있으면 편안해 진다고 한다. 아이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다. 아빠는 아이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가까이 끌어당겨 강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하고 이야기 해주신다. 아이는 강물을 바라본다. 아이는 굽이치고 거품일고 그 이면에는 고요하게 강물처럼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 조던 스콧 글, 시드니스미스그림, 김지은 옮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그림책 일부 중 한 장면 >
이 책을 읽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목구멍이 막힌 듯하게 말문이 안 터졌던 무수한 시간들, 그러면서 난 왜 못하지 하며 자책했던 시간들, 나의 이야기를 웅얼거렸던 날들, 나도 강물처럼 말하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하였다.
나이 40대가 되어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온 힘겨운 시간들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구나. 내가 그걸 외면하고 있었구나. 이젠 마주봐야지. 두려워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하여 껴안아야지. 그리고 토닥거려야지. 강물처럼 말하고 흘러가는 이 시간들을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