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1 카오스에서 살아남기
사흘 간의 황금연휴가 시작됐다.
연휴는 곧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어딜 가도 북적북적하고 어딜 가도 시끄럽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새벽부터 엄청난 소음에 눈을 떴다.
내가 캠핑하던 해변은 넓은 백사장 덕분에 사람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캠핑을 할 수 있는 해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한시에 시작된 불꽃놀이는 사람들과 유지한 거리가 절대 적당하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다.
와다다다 터지는 폭죽은 보기에만 예쁘지 그 굉음과 탄약냄새가 아주 아주 예쁘지 않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을 때 내 텐트 안에서 폭죽이 터진 줄 알았을 정도니 말이다. 새벽 한시에는 사람이 잠든다는 사회적인 룰도 함께 터트린 저 폭죽이 참을 수 없게 미워졌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연휴니까. 그래 삼일간의 연휴니까 너무 즐거워서 그런 거겠지. 365일이 연휴인 내가 참아야지 싶었다.
주섬주섬 에어팟을 귓구녕에 쑤셔넣고 차단되지 않는 소음들이 부디 마법적으로 차단되기를 바라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나는 불특정다수들의 끝나지 않는 수다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텐트를 정리했다.
사흘간의 연휴를 상징하는 내 세번째 손가락을 허공에 흔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 가라 이것들아- 너희들의 인생사 어젯밤에 잘 들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지도를 켜보니 두타산 무릉계곡이 눈에 확 들어온다. 무릉도원인 계곡이라니 안 갈 수가 없지.
계곡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아 안심하며 운전했다. 그런데 역시 그 놈의 황금연휴답다. 도착해 보니 주차장마다 만차에다가 아직 단풍도 들지 않은 두타산을 안타깝게 여긴 중장년들이 형형색색의 아웃도어 등산복을 입고 단체로 서있다.
그 풍경에 압도당할 새도 없이 사람들에게 밀려 강제산행을 시작했다.
교통체증은 도로에서만 겪는 줄 알았지만 이곳은 인간 교통체증이 있는 곳이다.
초입길부터 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산행하고 아무리 올라가봐도 단풍인간들의 행렬은 끝이 나지 않는다. 두타산의 인간체증은 첫번째 전망대인 베틀바위에서 절정에 달했는데 앞으로 보이던 수 십명, 아니 수 백명의 사람들이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 있다. 이 곳은 마치 도떼기 시장..?
시끌벅적 모여 막걸리 마시는 그룹, 왜인지는 모르지만 육두문자를 날리며 고성방가하는 아저씨들,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떠는 사람들까지 세상의 모든 아저씨 아줌마를 다 본 것 같다.
다들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겠지.
나도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깔끔하게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갔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고요 저는 이만 사라질게요.
땀도 많이 나고 귀도 아프고 정신도 하나 없는 상태로 내려와 나만의 힐링 장소로 향했다.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실내수영장. 쉬지 않고 물을 가르며 랩을 돌면 복잡했던 머리가 단순해진다.
어디선가 보았던 ‘우울은 수용성이기에 물에 씻으면 잘 사라진다’ 라는 글귀처럼 수영장 물에 내 정신 없던 하루도 씻겨 나가기를 바랬다. 적당히 두근대는 심장과 시원한 물 속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체온이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다고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