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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비 Oct 10. 2022

수영의 짜릿함

DAY16 속초 수영장

나는 잡생각이 많은 편이다. 

밥을 먹거나 길을 걷다가도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온 정신이 팔려 방금까지 먹은 밥이 무슨 맛인지,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 까먹을 정도다. 

그 잡생각은 주로 핸드폰으로 풀 수 있는 것들이다. 한강의 시집 제목이 ‘서랍을 저녁에 넣어두었다‘ 인지 ’저녁을 서랍에 넣어 두었다‘ 인지 문득 헷갈린다거나 (둘 다 맞는 제목이 아니다) 완도에서 제주도까지 다리가 생긴다면 몇 Km에 달하는 건지 (100KM가 넘으니 다리가 생길리 만무하다) 혹은 맛있게 마시고 있던 라떼의 원두는 어디에서 왔는지 따위의 것들이다. 소위 MBTI검사를 하면 상상력이 풍부한 N대신 S성향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MBTI가 유행이길래 최근에 한번 더 해봄) 이런 잡생각이 멈추지 않는 걸 보면 가끔은 성인 ADHD가 아닌가 의심 될 정도다. 


이런 성향이 심해진다 싶으면 내가 무조건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으니 그것은 달리기 그리고 수영. 

체력이 좋은 편인 만큼 웬만큼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힘들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오래 그리고 빡세게 해야지 잡생각을 덜 수 있다. 

비가 많이 오던 오늘도 어김 없이 심해진 잡생각 때문에 수영 생각이 간절해져 속초에 하나 뿐인 국민체육센터로 향했다. 


지방 소도시의 수영장에 가면 좋은 것이 자유수영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센터 입장에서는 슬프겠지만 여유롭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레인을 쓸 수 있는 내게는 개이득인 셈이다. 속초 또한 다르지 않아 나 혼자 레인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힘차게 벽을 차고 양 팔을 머리 뒤로 쭉 뻗으면 본격적인 시작이다. 

한 마리의 생선이 되었다고 믿으며 꼬불꼬불 온몸으로 웨이브를 탄다. 그리고는 숨 쉬러 올라와 본격적인 영법 자세를 취하며 솨아솨아- 물이 갈라지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다. 물을 느낀다는 의미에서 ’느끼는 영법‘이라 칭하는 자유형을 할라치면 물의 촉감이 더 세밀하게 다가와 가끔은 이 곳이 거대한 액체 젤리 속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액체 젤리 속을 파먹으며 길을 만드는 개미 한 마리일 뿐이라는 생각도 빼놓지 않고. 개미 치고는 빠르게 25m 끝 지점에 도착하면 최근에야 능숙하게 할 수 있어진 플립턴을 빙그르르 돌고는 쉬지 않고 다시 출발이다. 앗 그런데 스트로크 할 때마다 킥 타이밍이 어긋난다. 예전부터 지적받았던 습관인데 아직도 안 고쳐지는 걸 보면 습관이 참 무섭다. 어서 고쳐야 할 텐데. 

이렇게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온 수영장에서도 끝나지 않는 생각들을 하다가도 문득 이런 순간이 온다. 


'정신 차려보니 몇 바퀴 돌고있는지도 몰랐네?'


잡생각이 흘러 들어오는 틈을 메우기 위해 낑낑대다가도 마법적으로 그 틈새가 메꿔지는 순간이다. 

이 세상 속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느끼다가도 그 존재감이, 심지어는 세상의 존재감도 사라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 

누군가는 runner’s high 또는 swimmer’s high라고 부르는 이 순간을 난 무아지경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신이 한곳에 온통 쏠려 스스로를 잊고 있는 경지라고 뜻풀이 되는 무아지경 속에서 내 존재를 잊고 어떤 행위에만 집중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행복이다. 나 라는 존재가 고통일수록 나를 잊는다는 것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뜻한다고 믿기에 이 순간은 더 반갑고도 안심되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이런 무아지경의 찰나를 반갑게 마주하기 위해 잡생각을 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면 다시 열린 생각의 틈으로 정신없는 소용돌이가 치지만 오늘은 그것조차도 반가웠다. 그리움이 깊을수록 반가움도 커지는 것처럼 생각이 많아 머리가 괴로울수록 이런 무아지경의 순간은 더 짜릿하고 반가워지는 법이니까. 

내일도 차곡차곡 쌓인 잡생각들로 더 반가운 순간을 맞이할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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