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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비 Sep 30. 2022

여자 혼자 등반합니다2

DAY6 국립공원 승격이 시급한 청량산

안동의 유명 관광지(예끼마을, 도산서원)를 모두 구경하고 다음 목적지인 태백으로 향할 준비를 한다. 차로 한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이니 쉬엄쉬엄 운전하면 될 터.

35번 국토를 타고 출발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바깥으로 보이는 놀라운 경치에 오 마이 갓- 소리가 절로 나왔다. 거대한 바위절벽이 파노라마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눈 돌리는 모든 곳이 초록인데다 낙동강 흐르는 소리까지. 호주 동부에 있을 당시 갔던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이 떠올랐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단 말이야? (알고보니 35번 국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그린가이드 별점을 받은 길이다)

내 안의 급진개화파 정신을 호되게 꾸짖으며 이 산의 정체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청량산 도립공원. 이름마저도 그 모습처럼 청량하기 따로 없구나 캬- (이 드립을 그동안 몇 명이나 했을까 잠시 궁금했다)


오후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여기는 무조건 가야한다는 생각에 예정에도 없던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화로 고쳐 신고 삼십분 정도 올라가니 벌써 목적지인 청량사에 도착. 산 중턱에 있는 절인데 세상 꼭대기에 위치한 것 마냥 모든 것들이 내려다보이고 거대한 산 봉우리들이 절을 감싸고 있는 것이 꼭 다른 세상 같았다.

 

와 대박 대박- 관광객 티를 있는 힘껏 내며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고 눌러댔다.

요리갔다 조리갔다 왔다갔다 거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참을 사진 찍고 법당 주위에 설명문을 보니 이 절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지은 사찰로 창건 설화도 적혀 있었으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어느 마을에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난폭한 소가 있었는데 청량사를 창건 중인던 원효대사의 눈에 띄어 절로 데려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절에 온 이후로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어 청량사를 짓는데 필요한 재목이며 여러가지 물건들을 밤 낮 없이 운반하고는 준공 하루 전 생을 마쳤다.”


방금 전까지 사진을 찍어대며 날뛰던 내가 생각나 잠시 뻘쭘해졌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게 됐다던 소처럼 나도 다시 차분함을 장착하고 법당으로 들어갔다.

스님 두 분이 계신다. 분주하게 과일이며 음식이며 상을 차리고 계셔서 궁금했지만 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두 분의 대화만 엿들었다.

“이거 이거 사과는 알이 엄청 큰게 자칫하면 떨어진다!”

“테이프로 감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여”

“꽁꽁 묶어라 꽁꽁.”

“알았어 알았어. 에구 우리 할매 아주 호강하네 호강혀.”

옆면 안쪽 내부를 찾아보니 보살님 영정사진이 올려져 있다. 내일 오전에 있을 49재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 하셨다. 우리 엄마 49재는 되게 조촐하게 했었는데. 화려한 상을 보니 괜히 엄마에게 미안했다. 내년 제사는 한번 거하게 차려줄게!


시간을 보니 오후 4시반이다. 6시반이면 깜깜해지니까 슬슬 내려가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옆에 있던 분이 내게 물었다.

“여기서 하늘다리 가려면 얼마나 걸려요?”

하늘다리라면 정상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다리다. 이 시간에 거기까지 가려는 건가? 지금 가려는 건지 물으니 그렇다면서 나도 같이 가자고 꼬신다. 잠시 갈등하다가 두 분을 따라 나섰다.



여자 혼자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라면 이런거다.

왜 혼자 왔어요? 안무서워요? 남자친구 없어요? 결혼은 안했어요?

네 혼자 왔어요. 가끔 무섭고요. 남자친구 없고요 결혼 할 생각 없습니다.

함께 등산하고 있는 아줌마 두 분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왔다고 하니 뭐가 그리 궁금하신지 신상캐기를 시전하고는 마지막 결정타 결혼은 언제 할거냐 멘트를 던진다. 명절도 아닌데 잔소리가 줄을 이은다. 우리 아빠도 나한테 잔소리 안하는데 이번 여행하면서 징하게 듣는 것 같다. (아 그리고 본인들도 남편 꼴보기 싫어서 둘이만 놀러 왔다고 하더니 왜 나한테 계속 결혼하래? 언행불일치 오진다) 네- 네- 맞아요- 필요한 맞장구만 치며 입을 다물었다.


한시간 오르막길이 끝나고 하늘다리에 도착했다.

팔영산에서 단련되어 그런지 뒷산 오르는 것 마냥 가볍게 올랐는데 계단만 있다면 하늘 끝까지도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지쳐 허덕이는 두 분을 뒤로하고 먼저 다리를 건넌다.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미터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다리답게 밑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 까마득하다. 내려다보는 것 만으로 오금이 저렸다. 요실금 오려면 아직 한참이라는 점이 매우 다행스러웠다.


도착한 우리 모두 인증사진 찍고 여기까지 오기를 잘했다며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낄낄 웃었다. 가져온 사과랑 두유도 알콩달콩 나눠먹고는  지기  하산했다.

내려가는 길에는 두 분 다 더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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