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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Jun 08. 2024

이데아

형상론, 이데아론

ειδος, "visable form", "가시적 형태"와 관련된 μορφη, "shape", "모양" 그리고 φαίνω, "shine", "비추다"에서 파생된 φαινομενα, "appearance"와 인도유럽조어의 bʰeh₂[1] 또는 bhā[2](산스크리트어의 빛 또는 보이다의 어근)의 본래의 의미는 모호해지면서 추가적인 특별한 철학적 의미를 획득한 서양철학이 시작되기까지 여러 세기들을 넘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플라톤은 ειδος, eidos, 가시적 형태와 ιδεα, idea라는 용어를 상호교차적으로 사용했다. 사실 플라톤의 형상과 이데아는 결국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되는 본질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 개념 또는 정신이라 표현해야 맞다. 세상에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본질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 시대의 언어로는 영적인 세계다. 이데아는 이러한 것들의 집합체며 인간의 영도 이곳에서 나왔다.

이데아는 물질세계의 근원적이며 본질적인 형태가 실제로 보이지 않으며 완전한 개념 또는 영적인 상태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하면 영적인 실재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아는 플라톤에게는 천국의 개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천국은 선의 이데아다. 인간의 영은 그곳에서 출발하여 루비콘 강을 건너 옴으로 그곳의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 돌아가는 과정은 이성으로 이데아를 인식하여 그것을 추구함으로 가능하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하면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영을 추구한다는 것은 육신을 벗은 정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형태가 바로 육신이 없는 정신이다. 그래서 헬라 종교철학은 육신을 악하게 여긴다. 육신은 영(정신)이 벗어나야 하는 감옥으로 본다. 이러한 이해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육신을 벗을 수 있는 독배를 마심으로 육신을 벗었다. 그의 죽음의 순간의 독배에 대한 선택은 자신의 종교철학에 대한 신념을 따른 것인데 그것은 악법도 법이다 하여 준법적 추구의 발로가 아니다. 그의 추구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광신으로 죽음이후의 육신을 벗은 이성의 세계를 향한 열망이었다. 그 열망으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헬라인들에게 영은 인간의 육신을 벗어난 순수한 정신의 영역이다. 그리고 혼이란 육신과 관련된 생각이다. 육신이란 단순히 몸을 의미하며 몸이 추구하는 욕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헬라인들이 추구하는 이데아는 순수한 정신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데아의 일자나 이데아 자체는 칸트의 순수이성과 그 뜻이 같다. 또 한 순수한 정신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본질적 최고의 집합체이므로 바로 순수한 정신인 절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절대정신은 그 순순한 정신의 집합체 중에 헬라인들이 말한 가장 순수하고 숭고한 정신인 일자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절대정신은 그 세계의 모든 정신의 집합체이며 진리의 법칙의 집합체로서의 존재임으로 이데아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모든 개념을 이해함에 있어 우리가 헬라적 개념에 접근함에 가장 근접한 단어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데아는 정신적 세계이며 그 정신 중에 최고의 정신이 일자다. 인간의 정신과는 다른 비인격적 사물의 본질(이데아)은 정신세계 안에 있는 본질적 개념이다. 삼각형에 대한 본질적 개념이 정신세계 안에 있는 것이다. 산이나 들이나 나무에 관한 근원적 개념이며 그 속에 있는 근원적 법칙의 세계에 대한 관념 즉 정신적 개념이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헬라인들이 상상한 이데아란 이런 것이었다.

그래서 서양 철학자들이 정신이나 이성이라는 단어들에 집중하고 이러한 고대의 개념에서 유도된 순수이성이나 절대정신, 시대정신, 국가정신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 철학자들은 전혀 새로운 개념을 말한 것이 아니다. 단지 고대의 철학의 용어들을 자신의 시대에 적합한 언어들로 번역하여 그곳에서 좀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얻게 된 개념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서양철학자들이 이데아를 개념이나 사상, 또는 정신이나 이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번역한 것은 오랜 세월(수천 년) 동안 그리스 철학의 아래에서 그리스 사상을 연구한 전문가들의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최고의 번역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데아가 형상 또는 본질적 형태를 의미하는 단어지만 그 의미도 원래는 보다에서 출발했다. 본다는 것은 빛을 통해 인식해서 아는 것으로 이데아도 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세상의 본질적 형태이다. 즉 이성으로 파악된 앎의 본질적 형태가 이데아다. 그런데 본질적 형태라는 말은 본질적 개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헬라인들이 이해한 이데아는 영적 세계로 육신이 없는 정신만이 존재하는 개념(생각, 정신)이다. 그런 육신적 욕구가 없는 순수한 정신과 정신의 생각(개념)들의 총합이 이데아다. 플라톤이 추구하고 헬라인들이 추구한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 추구하는 지혜와 진리다. 그것은 사고의 영역 안에 있는 영적인 것 즉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닌 정신을 통해 보는 지혜와 진리다. 그러므로 이들이 보는 본질적 형태라는 것은 생각으로 보아야 하며 그것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식하는 것이고 인식은 인간의 이성 즉 헬라인들의 용어로는 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념이나 사상인데 그 모든 것은 생각 즉 정신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그 정신의 활동인 생각의 범주 중에 육신적인 추구가 아닌 진리를 알고 지혜를 추구하는 정신이 바로 영인 것이다. 이데아를 추구하는 것은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정신의 활동 즉 생각이다. 즉 이데아계는 참으로 보이는 것 참으로 아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본질적 보임과 앎의 총체다. 그리고 그 이데아 속에 세상을 창조한 데미우르고스가 있고 그보다 더 높은 곳에 하나 the One [Τὸ Ἕν][3], the Source, or [Monad][4].[5] 즉 일자가 존재하는데 그는 세상의 유일한 근원이다. 모든 것은 그 일자에게서 유출되었다. 데미우르고스도 그 일자에게서 유출된 존재다. 일자를 현대적 용어로 번역하면 가장 숭고한 정신이며 가장 본질적 정신이다. 이를 칸트는 순수이성이라 했으며 헤겔은 절대정신이라 했다.

이러한 이해에서 이데아가 현대적 용어로 생각(개념, 사상, 이성, 정신)이라고 서양철학은 번역하였다. 결코 원래의 의미에서 변형된 개념이 아니다. 헬라인들이 사용한 고대의 단어 이데아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시대의 용어로 정신 또는 이성이라고 정확하게 번역을 한 것이다.

물론 이런 번역에는 원수들의 음모가 포함되어 있다. 원수들은 자신들을 정신(생각, 사상)이라 포장하여 무신론의 세상에서도 자신들이 인간의 정신(생각, 개념) 속에 드나들며 인간들을 조종하며 지배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1] (https://en.wikipedia.org/wiki/Proto-Indo-European_language "Proto-Indo-European language")

[2](https://en.wiktionary.org/wiki/Reconstruction:Proto-Indo-European/b%CA%B0eh%E2%82%82-  "wikt:Reconstruction:Proto-Indo-European/bʰeh₂-")

[3](https://en.wiktionary.org/wiki/%CE%B5%E1%BC%B7%CF%82 "wikt:εἷς") [[G1520]] cardinal 1)

[4](https://en.wikipedia.org/wiki/Monism "Monism")

[5] (https://en.wikipedia.org/wiki/Henosis#cite_note-FOOTNOTEStamatellos2007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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