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장의 미혹에 관한 언급들
마태복음 24장의 미혹에 대한 언급들
마가복음 13장의 미혹에 관한 언급들
미혹
불법
• 진리의 법
• 불법
• 불법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혐오스러운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 하는 자들과 점술 하는 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의 받을 것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계 21:8, 바른)
너희는 요한의 글들에서 두려워하는 자, 믿지 않는 자, 혐오스러운 자, 살인하는 자, 음행 하는 자, 점술 하는 자, 우상숭배자, 거짓말쟁이(계 21:8)를 보았다. 이들은 첫째 부활(생명; 다시 생명을 얻음)이 아닌, 둘째 사망에 속한 자들이다. 계시록에서 둘째 사망에 이르는 자들은 산상수훈의 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산상수훈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며 진리의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산상수훈에는 음행 하는 자와 살인하는 자에 대한 완전한 기준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다른 계명을 어긴 자들에대한 기록도 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나(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다. 또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우리(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우리를 나타낸다. 나의 계명은 사랑이다. 산상수훈의 핵심도 사랑이다. 아버지를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이다. 이것이 선지자의 법이며 이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완전하여짐이다. 구약 모든 계명의 핵심이 아버지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음을 너희는 이미 복음서의 부자 청년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완전한 아버지 사랑과 완전한 이웃 사랑을 행하는 자가 우리의 계명을 지키는 자다.
앞에서도 산상수훈을 잠시 언급하였는데 산상수훈은 완전한 중심과 완전한 행함을 동시에 요구한다. 우리(하나님)를 완전히 사랑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영인 우리(하나님)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 채워져 결핍과 핍절을 느껴야 한다. 그러한 자가 영에 가난한 자다. 너희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번역한 글은 오역이다. 내가 원래 히브리어로 말한 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에는 영에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그대로 실려있다. 영에 가난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번역자들이 심령 즉 영이 가난한 자라고 번역을 한 것이다. 영(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면 그 영이 사람의 영이다. 그런데 영에 가난하다고 하였을 때 영은 바로 영(Spirit)인 우리(하나님)다. 원래 너희가 팔복이라 부르는 십복(구약의 십계명과 대칭)의 첫 계명은 영인 우리를 향한 가난 즉 결핍과 핍절함의 절박함이 있는 자를 뜻한다. 누가 천국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천국은 우리의 나라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오려면 영인 우리에 대한 절박한 가난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갈망하는 자가 천국을 얻게 된다.
이렇게 산상수훈은 시작부터 중심으로 완전히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요구한다. 나머지 열 가지 복을 말하는 구절들도 모두 중심으로 완전히 우리(하나님)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요구한다. 또한 여기서 확장되어 십복을 말한 이후의 산산수훈은 사랑하여하는 행위의 완전함도 요구한다. 우리 사랑과 이웃 사랑의 율법을 일점일획도 어기지 않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더 완전한 행위를 요구한다.
바리새인들의 계명은 완전한 행함을 요구한다. 그런데 나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말한 진리의 법은 완전한 행함에 더하여 완전한 중심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행함으로 지켰다. 그런데 나의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행동뿐만 아니라 중심에서 미워하는 것도 금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는 율법에 의한 의가 아닌 이신칭의의 믿음의 의가 맞다. 그런데 그 의는 완전한 행함 뿐 아니라 완전한 중심의 변화도 일으킨다. 만약 행함도 중심도 변화되지 못하여, 그래서 나의 십자가의 용서를 반복적으로 받아야 하는 반복된 죄인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도 못한 의를 소유한 자다. 그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구원받지 못했듯 구원받지 못한 자이다. 그가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다른 점은 유대교 대신 단지 기독교라는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것뿐이다. 그가 가진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행함을 가져올 능력이 없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의 능력은 더더욱 없다.
나의 법은 완전한 중심과 완전한 행함을 요구한다. 이를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산상수훈의 복은 여기에 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의 복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복이 있다. 이렇게 마음과 행위로 완전히 우리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법을 어긴 불법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 둘째 사망: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결국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혐오스러운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 하는 자들과 점술 하는 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의 받을 것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계 21:8, 바른)
이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일부이다. 이는 사랑의 법을 떠났기 때문이다. 요한의 앞 선 글들과 계시록을 보라.
두려워하는 자들-1
마 5-7장의 산상수훈을 지나 마 8-9장에서 나(예수님)는 우리(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보였다. 기적들을 통해 보였고 수많은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병자들이 나음을 받았다. 복음을 선포했다. 또한 그 이후 마 10장에서는 나의 제자들을 세워 권능을 주고 파송했다. 파송받는 제자들을 향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핍박과 순교 앞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보아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양들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져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고 그들의 회당에서 너희를 채찍질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 앞에 끌려가서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들이 너희를 넘겨줄 때에 너희가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지 걱정하지 마라. 그때에 너희의 말할 것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할 것이다. 또한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일어나서 그들을 죽일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미움을 받겠으나, 끝까지 견디는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너희를 이 성읍에서 박해하면 너희는 다른 성읍으로 피하여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니, 인자가 올 때까지 너희가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결코 다 다니지 못할 것이다."
"제자가 스승 위에 있지 않고 종도 그의 주인 위에 있지 않다. 제자가 그의 스승만큼 되고 종이 그의 주인만큼 되면 그것으로 그에게 충분하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다면 그의 집안 식구들에게는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가려져 있는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고 숨겨진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빛 가운데서 말하여라. 또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것들 중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아버지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할 것이다."
"내가 땅 위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딸이 자기 어머니를,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나누어지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들이 자기 집안 식구들일 것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 38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마 10:16-39, 바른)
누가도 이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었는데, 그분께서 그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들이나 형제들이나 자매들이나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군가가 망대를 세우고자 하면, 먼저 앉아서 자기가 그것을 완성할 만한 비용을 가지고 있는지 계산해 보지 않겠느냐? 그가 기초만 놓고 그것을 완공하지 못하면,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그를 비웃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건축을 시작하였으나 완공하지 못하였구나.'라고 할 것이다."
"또는 어떤 왕이 다른 왕과 전쟁을 하러 나갈 때에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대적해 오는 자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을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만일 그럴 수 없으면, 아직 그가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위한 조건들을 요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눅 14:25-33, 바른)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의 다른 글들에도 두려움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 이는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으며,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하게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일 4:18, 바른)
두려워하는 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예하지 못하고 둘째 사망에 떨어진다는 것은 요한이 계시록을 집필할 당시에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에 따른 경고다. 그 상황은 핍박과 순교다. 순교 앞에 두려워 떠는 자들에게 두려워하는 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둘째 사망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생활의 염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21세기의 너희는 이 구절들을 생활의 염려에 대한 두려움 정도로 해석하고 너희 삶에 적용하고 있다. 이는 해석의 오류다.
이와 비슷한 해석 오류를 일으키는 구절 중 유명한 베드로의 글이 있다.
두려워 하는 자들-2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