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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ug 16. 2023

삼년 만에 대중목욕탕 도전기

힐링 에세이

올 해 여름은 지금까지 겪었던 여름 무더위 중에서 최고 인듯 하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겨울 추위가 문제였지 아무리 더운 여름도 거뜬히 버텨내곤했던 나로서도 올 해는 에어콘 없이는 한 시도 못 버티겠다. 잠을 자려해도 에어컨 없이는 잠들기 힘들다. 문제는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잤다가 냉방병에 걸려 재채기에 콧물에 부작용으로 고생을 했더니 에어컨도 계속 켜놓기도 무섭다는 거다.


비가오려하는지 후덥지근한 기온에 몸에 땀이 차기 시작하더니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찜찜함에 더해 불면까지 여름 밤이 영 괴롭다. 끈적 끈적, 몸이 근질 근질하다. 이럴 땐 사우나가서 땀도 쫙 내고 때도 쫙쫙 밀고 냉탕에 몸을 담그연 이열치열의 맛으로 개운할텐데 목욕탕가기가 껄끄럽다.


목욕탕을 못 간지 벌써  삼년이 넘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침입한 후로 발길을 뚝  끊었으니 목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불편함이 이만 저만 아니다. 예전에 주말이면 꼭 사우나를 이용하곤 했는데 뜨거운 열기 속에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냉탕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나올 때의 그 상쾌함의 즐거움이 없어 진것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스트레스에 젖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거나 몸이 찌뿌둥할 때 사우나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이완시켜 주는 큰 역할을 한다. 뜨거운 한 여름에는 더 뜨거운 맛으로 추운 겨울에는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고 움츠렸던 근육의 이완 작용을 돕는다. 고작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주는 만족감과 행복은 더할 나위 없는 개운함이다. 일단 목욕탕을 가면 샤워를 하고 사우나에 들어가서 모래 시계부터 엎어놓는다. 자잘한 분홍색 모래가 쉴 사이 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그때부터 쓸데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때로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경쟁자가 있다. 후끈한 밀폐의 공간에서 쑥 냄새를 맡으며 온몸으로 열기를 받아내자면 모래 시계의 모래는 반도 내려오지 않았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온 몸에 땀은 흘러 내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쓸데없는 인내심 테스트 후에 밖으로 나와 냉탕에 몸을 담근다. 살 것 같다. 머리에 지압을 한 답시고 어허! 하며 소리를 내면서 폭포수도 맞고 하면 그동안 업무에 스트레스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조금을 쉬고 이번에는 사방이 천연 색 돌로 둘러싸인 옥 사우나실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내 나이 또래의 개구리 형 체형을 가진 중년의 사내가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금 목걸이를 하고 탕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그 사내다. 분명히 나보다 나이가 어릴 건데 관리를 안해서 저리 몸 매가 형편없다고 내 편의대로 추측하고 속으로 '나이가 들수록 관리를 해야지' 라고 핀잔을 준 후 그 사내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언의 경쟁을 시작한다. 모래가 다 내려왔다. 나는 다시 모래 시계를 뒤집어 놓고 여유 있게 목을 돌리며 땀을 쭉쭉 닦아낸다. 앞에 앉아있는 사내가 힘들어 한다. 잠시 후 나가더니 수건에 물을 적셔왔다. 당황스럽다. 여기서 질 수는 없다. 꿋꿋하게 버티겠노라고 각오를 다진다. 코에 물수건을 대고 있던 사내가 못 견디겠는지 잠시 후에 벌떡 일어나 후다닥 나가버린다. 나 정도는 버텨야지 하면서 천천히 일어나 의기양양하게 나간다. 그 사내는 냉탕 안에서 퍼진 물고기가 되어 있다.


더 이상 미룰수는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호기롭게 사우나로 향한다.향기로운 아로마 향 그윽한 온탕에 전신을 푸욱  담그고 긴장을 푼다. 온 몸이 뜨끈하니 근육이 이완되는 것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노인 한 분이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염불인지 노래인지 알 수없는 주문을 외운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보는 정겨운 풍경이다.


유리창에 서린 김사이로 벌거벗은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갈등이 시작된다. 사우나실에 들어가고 싶은데 걱정이된다. 한동안 잠잠하던 코로나가 휴가철에 마스크 해제에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데 사방이 꽉 막혀 공기순환이 잘 안되는 곳에 들어갔다가 혹시라도 감염이 된다면 가족들에게 옮기지 않을까 . 직장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여진다.


일단 때를 밀기로 한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이어져 내려온 대한민국 최고의 발명품 이태리 타올로 벅벅 문지르니 지우개로 글자를 지울 때 나오는 지우개 똥처럼 쭈걱쭈걱 불순물들이 밀려나온다. 보기만해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그동안 집 욕실에서 탕에 물을 받아놓고 밀던 기분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마치 번데기에서 탈피한 나비의 기분이 이럴까. 온 몸이 날아갈듯 가볍다.


사우나 실에 들어가고 싶다.


'설마 잠깐 하고 나오는데 걸리겠어?'


'아냐. 지난 번 아버지도 목욕탕 가셨다가 감염되셨고 나도 어디서 옮았는지도 모르게 걸렸었잖아 꽉 막힌 사우나실은 아니야'


한참을 탕 속에서 망설인 끝에 불현듯 이곳에 야외탕이있는 것이 떠올랐다. 조그만 공간이긴 해도 바깥이니까 코로나 위험도 훨실 덜하고 그곳 해수탕을 가야겠다. 이른 손 끝으로 살짝 찍어 혀에 대보니 보니 짠물이다. 비릿한 바다내음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바닷물이다. 드넓은 바다를 상상하며 몸을 담근다. 파란 하늘이 보인다.


목욕탕은 삶의 축소판이다. 양 어깨에 선명히 박힌 굳은 살, 구부러진 허리, 뒤뚱 거리는 걸음, 근육으로 다져진 멋진 몸매,  복부에 나타나는 맹장 수술 자국까지,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이의 살아왔던  모습이 그림처럼 스친다. 그러나 거리낌없이 모두가 알몸으로 누비는 이곳에서만큼은 계층도 계급도 지위의 높낮음도 없다. 오로지 때를 밀고자하는 공통의 목표와 피로를 풀고자하는 휴식이 있을 뿐이다.


욕조 안에서 눈을 감고 천천히 몸을 타고 올라오는 열기와 이마에 소글송글한 땀을 즐기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시간,  이 시간만큼은 나 또한 어떤 잡념도 없이 그동안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먼 곳에 있는 행복을 쫓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소소함 즐기는 것, 비행기를 타고 경험해보았던 일본의 유명 온천보다 지금의 이 탕 안이 훨씬 편하고 행복하다.


탈의실에서 선풍기를 쐬며 맥반석 계란에 음료수를 마신다. 배고픔과 갈증을 달래주는 계란 두개와 사이다 한 잔, 어떤 산해진미,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몇년 만인가. 비록 사우나실은 안들어갔지만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얻은 행복이다. 나의 3년 만의 목욕탕 도전기는 이렇게 끝났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바깥은 쨍쨍한 햇살아래 매미의 울음 소리가 막바지 여름의 끝을 재촉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감사의 소확행으로 만족한 날, 집에 돌아가는 길이 마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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