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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an 26. 2023

고독한 행복

힐링 에세이

김녕의 바다다. 해풍을 맞고 견디어 온 세월만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어느 고성의 성벽만큼 파랑의 바다와 주황의 하늘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곳, 하루 종일 바다와 말없는 대화를 나눈 끝에 제주도의 돌만큼이나 까만 밤을 얻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들리는 파도의 철썩거림은 눈을 감고 듣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감미롭다.


밤늦도록 잠을 못자고 있다. 온 몸으로 제주를 받아들이며 바닷가에서 한 나절을 보내 피곤도 하겠건만 이상하리만큼 잠이 오지 않는다. 더 마주하고 더 많이 대화하자는 바다의 채근인가.

제주의 밤은 맑고 보석처럼 투명하고 내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하기에 정화작용의 덕분으로 정신까지 멀쩡해져 잠이 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도시 속의 밤은   늘  글 그러하듯  가로등 불빛과 불꺼진 창,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에 묻혀  주파수가 잡히지 않아 잘 들리지 않는 라디오 소리같은  술취한 사람들의 세상을 향한 날선  외침이 있다. 지금 제주 바다의 밤이 도시의 밤을 밀어 내고 있다. 그 빈자리를 고독이 채운다. 고독은 어떤 것에 대해 아직 남아 있는 그리움이 채워지지 않은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밤이 낮과 지나면 새벽이 오듯이  고독은 일상의 한 흐름일 수도 있고, 여유있는 자의 행복한 미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화두가 새벽을 가르고 행복을 가져올지 모자람을 가져올지 모르는 불면의 시간에 탑승을 한다.


행복이란 단어가 동동거리며 새벽을 뛰어다닌다.

'행복'을 원하는 것 들이 충족되었을 때 주어지는 결과물로 본다면 내가 충족시키기를 바라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기에 행복해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듯하다. 행복의 조건에는 재물도 있고 명예와 지위, 권력, 육체적 즐거움, 정서적 만족 등 여러가지가 있고 그 덩어리안에서 세포 분열을 이루어 있고 자잘하게 도열을 한다.  무언가 머리에 들어있는 듯한 지적인 모습도 행복을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도 있겠다.


어떤 것에 대해 아직 그리움을 남겨놓고 있는 것에 대해 채워지지 않은 아쉬움이 이 밤의 고독을 만든다. 신체의 편안함과 마음의 기쁨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행복이라면 이 새벽의 고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무엇인가 행복하지 않은 부분이 자꾸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고 복에 겨워 내지르는 일종의 쓸데없는 푸념일수도 있을것이다. 나의 조건은 어떤가. 물질 그 자체를 행복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재벌만큼 넉넉하지는 않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정한 재화를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눈에 보이는 것을 비롯한 감각적 쾌락은 일시적이겠지만 이에서 기쁨을 얻음도 분명하다. 내게 무엇인가 얻고 싶은 것이 있기에 그쪽 방향으로 머리를 쓰게되고 마음을 두게되고 원하는만큼 얻어지지 않기에 갈등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마음이 고독을 부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마음이 허덧함과 그동안에 쌓였던 멍을 갖고 살아간다. 적어도 마음이 안정되고 극도로 평안한 상태라면 모를까.  희노애락의 오욕이 기본인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란 수도자의 득도같은 종류는 아닌 듯하고 자기 만족의 마음이라고 보는데 어떤 것에 대해 아직 바램을 남겨놓고 있는 까닭은 그것에 대해 채워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들어 부쩍 ‘고독’이란 녀석과 자주 대면한다. 무슨 여유가 부족해서일까. 시간이 남아 돌아서일까.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 수도 있겠다. 낫살깨나 먹었는데 무슨 고독 타령인가. 갑자기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오늘 밤에 또 찾아올 녀석과 또 무엇을 하고 놀지? 그러고 보니 고독하다는 것은 내게 채울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인지, 마음이든 시간이든 빈 공간에 무엇을 채울지 오늘은 생각좀  해봐야겠다. 가을, 이 계절의 고독, 생각해보니 외로움과는 조금은 다른 이 불청객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내 곁에서 있어온 친구같은 존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오늘도 밤은 깊어오고 고독은 어김없이 노크를 한다. 시간의 흐름 위에서 많은 잡념이 혀를 낼름거리며 똬리를 튼다. 나는 사회적인 동물이면서도 늘 고독을 데리고 다니는 고독한 인간이다. 세상을 떠날 때는 한 줌 흙일 뿐 인것을, 왜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지를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고독하다. 나는 지금 혼자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삶이란 늘 버겁다. 그 번잡한 찰나들 가운데 아주 드물게 진짜 아주 가끔 삶이 느슨해지는 날이 있는데 그 날이 오늘이 아닌가 싶다. 그냥 어깨에 매여 있던 짐가방을 툭 더지고 시작된 바다 구경, 시원한 바람, 모든 걱정을 잠시 잊고 고독과 함께 떠난 여행에는 돌틈사이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의 귀중함이 있었고 푹신한 이불에 누워 은은한 조명을 즐기는 지금 이순간의 고독이 고맙다. 좋은 밤이다. 결코 새벽을 마주하고 싶지않은 지금,  스스로를 위한 행복한 고독의 시간이다. 하늘 위로 바다 밑으로 고독한 행복이 흐르는 김녕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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