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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ug 20. 2023

산토스와 삼계탕

힐링 에세이

완전한 여름. 한 가운데 삼심도가 넘는 더위, 사무실 밖은 위험지역이다. 복날은 아니지만 오늘 점심은 체력관리를 위해 삼계탕으로 먹었다. 크게 효과야 있을까마는 기분이라도 힘이 나는 듯하다.


삼계탕하니 지금 소식은 끊기었지만 2년을 넘게 알고 지냈던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 들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산토스, 라모스 등 6명의 젊은 친구들,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 들이고, 경기도의 커다란 금형 공장, 서울의 봉제 공장, 건설현장 등에서 일을 하였다. 산토스는 6명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30대 후반이고 그들의 리더 격이다. 사람이 얼마나 밝은지 더워도 웃고 추워도 웃고 일이 없어도 웃고 힘들어도 웃는다. 주말에 공원에서 홀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손 인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고,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한국에와서 힘든 점이 무언지, 좋은 점은 무엇인지 등등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집과 멀지 않은 한 동네 사람이어서 오다가다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가끔 커피도 마시고 그들이 한국어로 대화가 서툴 때라서 간단한 영어로 해보니 말이 통한다고 너무 좋아했다.


''한국에 와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빨리 빨리 였어요. 난 최선을 다해서 빨리 빨리 하고 있는데''


아파트공사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필리핀에 있는 조부모, 부모님, 동생 들까지  대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코리아 드림을 선택한, 20대 젊은이 들도 하루, 이틀 일하면 못하겠다고 도망간다는 일을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독일의 광부로, 간호사로 떠났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모습이 오버 랩된다. 산토스는 자신의 처와 아이 들의 사진을 내게 자주 보여주었고 그때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견디어내는 이유가 가족임을 말하곤 했다. 그는 나를 미스터 민이라 불렀다.


어느 해 여름 날이었다. ''미스터 민 나 이제 얼마 안있으면 집으로 돌아가요. 가기 전에 한 번 만나요''


언젠가 필리핀 여행을 갔을 때 필리핀 사람들의 닭 요리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주로 구이나 튀김 요리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치킨을 사줄 수는 없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해약겠다 싶어 더운 여름 철에 가장 한국적인 닭요리인 삼계탕이 생각 났고 산토스와 친구 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작별 선물로 삼계탕을 대접하기로 했다. 삼계탕 하나 만큼은 최고의 솜씨를 가지신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닭다리를 뜯어 산토스에게 권한다.


''우리 나라 사람 들은 옛날부터 무더위를 이겨내는 음식으로 삼계탕을 즐겨먹었어요. 이제 곧 더운 당신들의 나라로 가니 이것 먹고 돌아가서 늘 건강하세요''


 ''미스터 민, 나 한국 사람한테 처음 초대 받았어요. 너무 감사합니 다. 필리핀 마닐라 오면 꼭 연락하세요. 내가 맛있는 닭요리 대접할께요''


국적이 무슨 상관이 있고 나이가 무슨 장벽인가? 우리는 친구이고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 시대의 인간이며, 좋은 마음을 가지고 만나서 서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랑을 나누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해서 우리나라로 돈을 벌러 왔다고 해서 깔보거나 수준 아래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들에게서 어려움 속에서도 늘 밝게 웃는 긍정적인 성격과 웃음을 선물받았고, 그들은 힘들었던 한국 생활 중에 '빨리빨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맛난 삼계탕을 대접하는 정도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허겁지겁 닭다리를 뜯던 산토스와 그의 친구 들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지금 쯤 할아버지가 되었을텐데.. 행복하게 잘살고 있을까..


매일을 만나도 신경쓰지 않는 무덤덤한 관계가 있는 반면, 삼계탕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듯 단 한 번을 만나도 소중히 기억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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