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잠을 설쳤다. 잠이 들려고 하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앵앵'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잡으려고 일어나면 또 조용해지고 여름이 한창일 때는 안보이더니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려고 하는 시기, 처서에는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옛말이 무색하도록 오히려 더 극성이다. 잡으려고 불을 키면 사라졌다가 불을 끄면 또 나타나는 숨바꼭질 하기를 여러 차례, 모기와의 싸움에서 완전 패배하고 말았다. 요사이제 잠자리에 들 때마다 시달렸던 터라 모기가 싫어한다는 기피제를 사다가 머리맡에 걸어놓고, 에프킬라를 잔뜩 뿌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고 생각한 순간, 잠들기 전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않던 녀석이 불을 끄고 눕자 바로 나타 또 앵앵거린다. 그 소리에 신경이 얼마나 거슬리는지 여름 한 낮에 우는 매미 소리만큼 우렁차다. 결국 자다가도 모기에 물려 일어나 벅벅 긁기를 여러차례 아침에 일어났더니 모기 물린자국에 긁어서 생긴 상처에 팔, 다리 이곳 저곳이 말이아니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모기에 많이물린다. 모기는 기본적으로 후각이 아주 발달하여 주로 사람이나 동물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땀 냄새를 맡고 귀신같이 찾아오는거란다. 자기 전에 사워를 하는데도 나는 정령 냄새가 나는 인간이었던가. 또, 마른 사람보다 뚱뚱한 사람이 모기에 더 잘 물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도 역시 땀을 더 많이 흘리고 몸의 열이 쉽게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 몸매도 예쁘고 안 뚱뚱한데 말이다.
일본에서 어느 연구팀이 오래전에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한다. 64명 정도의 사람을 모아놓고 4가지 혈액형별로 각각 팔을 모기가 들어있는 통에 집어넣고 누가 가장 많이 물리나를 관찰한 결과 결론은 가장 많이 물린 혈액형이 O형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실험에서는 O형이 A형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이 물린 것으로 나타났는데 다른 연구에서도 O형인 사람들의 침이나 땀에 특정 분자가 포함된 경우에는 모기가 좋아한다는 추측이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왜냐하면 난 뚱뚱하지도 않고 땀도 많지 않기에 결국 혈액형은 O형인 것이 모기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모기는 약삭빠름의 대명사이다. 특히 낮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와 은신 후 깜깜한 밤이되면 목표물을 정하고 재빠르게 공격해 온다. 적진 침투를 명받은 고도로 훈련된 저격수라고 할까. 모기 앞에서 번번이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말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두 눈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이 있는지 소리 나는 곳을 향해 에프킬라를 분사할 뿐이다. 어떻해든 처치해서 오늘 밤은 무사히 넘기고 싶지만 쏘고 빠지는 녀석의 작전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모기는 백해무익한 해충이다. 피를 빨면서 바이러스나 세균을 같이 옮기기 때문이다. 뇌염부터 말라리아, 뎅기열 등 모두 모기가 옮긴다. 모기가 인간에게 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모기의 행패는 모기 탓인가. 인간에게 해로운 적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절기 상 가을이 되어도 가을 같지 않은 날씨의 이상기온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 살기 좋은 곳을 만든다는 허울 좋은 개발의 명목이 가져온 급속한 도시화의 부작용이다. 지구는 점점 모기가 살기 좋은 오염의 웅덩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젠 영하의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기가 아픈 지구가 혼수상태에 이를 즈음에 진화를 거듭해 변이를 일으켜 점점 덩치가 커지면서 지구를 정복하고 우리가 소와 양을 기르며 고기와 가죽을 취하듯 인간을 사육하며 식사 때마다 흡혈귀처럼 쭉쭉 피를 빨아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모기도 싫지만 모기만을 탓할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기를 극성스럽게 만든 건 인간이다. 인간의 욕심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인간끼리 물고 뜯는다. 교만, 시기, 원망, 거짓말, 이간질 등 사악하고 나쁜 빨대들이 독성물질을 뿜어내고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곪게 만든다. 모기는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남의 피를 빨 뿐이다. 산란을 위해다른 동물의 피가 필요한 모기는 종족 번식의 본능 그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인간은 생존과 관계없이 남보다 잘살겠다는 욕심이 지나쳐 남을 짓밟고서라도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로 세상을 멍들게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살아남아야한다는 절박함을 핑계로 내 욕심을 채우기위해 사악함에 동화 되어 부끄러움도 없이 막 되게 세상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양심과 정직함을 꼭 지키고 살아야한다는 교훈을 모기로 부터 배운다.
혹시 나는 나 편하자고 남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내 것을 위해 남의 것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무심결에라도 그 어떤 이에게라도 상처를 주지 모기처럼 앵앵거리는 내 안의 사이렌 소리가 타인의 잠을 설치게 하지는 않았는지 아침부터 푹푹 찌고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차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진실하고하고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꽉 채우는 출근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