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나의 조각들을 맞추어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게임을 하다 보면 인생은 퍼즐 맞추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관계와 시간의 조각이다. 가족, 연인, 회사, 동료, 학교, 친구 등의 조각을 내 삶의 바탕 위에 수없이 늘어놓고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다. 퍼즐의 종류도 다양하다. 일, 음식, 여행, 운동, 게임 등 눈에 보이는 것부터 사랑, 추억, 꿈, 미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복잡할 정도로 많은데 수많은 종류의 조각 들 중 한 개를 잃어버려도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또, 잘 못맞추면 맞는 조각을 찾기 위해 엄청 애를 쓰기도 한다. 퍼즐에는 단계가 있다. 유아, 아동, 청소년, 청년, 장년, 중년, 노년 등 시기별로 퍼즐의 그림 또한 다르고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면 그 다음 단계의 퍼즐이 있다는 거다.
얼마 전 아버지 댁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 아주 오래된 가족사진 한 장을 주셨다. 너무 낡아서 밑쪽에 일정 부분이 저절로 지워진 젊은 시절의 부모님과 아기 때의 내가 함께 있는 빛바랜 가족사진이다. 아주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부모님은 어느 누구보다 훈 남 훈 녀의 모습이다.
"나 죽으면 다 태워버려야 하니 가져가"
가슴이 뭉클하다. 카메라도 귀했던 시절, 나의 존재는 얼마나 소중한 당신들의 열매였을까. 없는 돈 있는 돈 다 털어 읍내에 하나 밖에 없는 사진관에서 찍었을 귀한 사진, 반짝반짝 초롱초롱했던 내 눈동자만큼이나 부모님의 마음도 밤하늘 의 별을 딴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사진을 가져가라고 하셨을까. 돌아가신 분의 유품은 장례 때나 삼우제, 49제 때 모두 태운다고 한다. 생전에 쓰던 물건을 태움으로써 고인이 내세에 가져가서 쓰게 하는 것인데 가장 멋지고 젊은 모습의 아버지, 여성미를 뿜 뿜 뿜어내는 아름다웠던 청춘의 어머니의 모습을 주신 것은 아마 당신들께서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날 때 가져가기보단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당신들의 가장 행복했던 때의 모습으로 대신하려고 한 것같다.
우리는 부모님의 타계 후 유품에서 돈이나 돈이 될 만한 것부터 먼저 찾을 것이다. 나머지는 가족이든 유품 정리하는 사람에게 맡겨 정리할 것이고 그냥 그걸로 끝이다. 아마 내가 세상을 떠날 때도 같을 것 같다. 그러면 가장 먼저 찾는 금품에서 부모님과의 소중한 추억이나 사랑을 기억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때 어머니와 함께 소풍갔던 사진, 운동회 때 가족이 함께 김밥 먹던 모습, 엄마 얼굴그리기 대회 상장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는 것은 완성이든 미완성이든 삶의 퍼즐 맞추기가 끝난다는 거다. 한 조각 한 조각 정성들여서 맞춰왔던 삶의 조각들은 쉬웠던 것도 있을 것이고 어려웠던 것도 있을 것인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조각하나 쯤은 세상에 남겨 놓는것도 좋지 않을까.
나는 내 아들에게 무엇을 선물로 줄까 생각하면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취미로 수집한 수석 중 제일 아끼는 것으로 줄까. 아니면 선물 받은 유명한 서예가의 붓글씨 액자를 물려줄까. 잡다한 것은 많은데 적당한 것이 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시대는 어쩌면 현금이 가득 들어있는 통장이나 아파트 한 채, 보험 수혜 등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고 아들 녀석도 돈으로 남기는 것을 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부모님께 받은 빛바랜 사진을 돈으로 평가할 수 없듯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부모님의 사랑은 삶의 가장 소중한 내 퍼즐 조각이다. 태어나서 삶을 시작한 첫 번째 퍼즐 조각, 부모님의 얼굴도 기억 못했을 한 살의 나이에 내가 부모님의 소중한 자식이었음을 증명하는 신비함이다. 지금은 연로하셔서 쇠약해진 몸과 병마에 시달리는 노인이 되었지만 중년이 된 지금의 내가 그러하듯 부모님에게도 멋진 세월의 역사가 있었다. 이제 나도 부모님의 뒤를 서서히 따라가고 있다. 언젠가는 부모님이 내게 주신 빛바랜 사진처럼 나도 세월의 퍼즐 한 조각을 떼어 아들 녀석에게 줄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내게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 런지 모르지만 한 조각 한 조각 정성들여 남아있는 퍼즐을 맞춰 가련다. 삶은 유한하고 지나온 세월은 총알같이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