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후밀 흐라발(1914~1997)은 체코 프라하 출생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역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정부의 20년 출판금지를 당했음에도 자신의 나라인 체코를 떠나지 않았고 지하출판을 통해 사회의낙오자, 가난한 예술가 등을 소재로 글을 써 체코의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소설은 35년간 지하실에서 폐지 압축공으로 일해온 남자 '한탸'의 이야기를 그렸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 한탸는 폐지로 버려진 책들과 사랑에 빠진 인물이다. 한 달에 2t의 책을 압축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다.
고된 노동을 견디기 위해 매일 수 리터씩 맥주를 마시고 지하실에 기거하는 생쥐, 바퀴벌레와 공존하며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지만, 책을 압축하는 일은 그의 삶 자체나 마찬가지다. 폐지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한탸는 인생의 몇몇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연인 '만차', 어느 날 우연히 함께 지내게 된 집시 여자 등과의 추억이다. 그러나 그가 사랑한 어린 집시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아우슈비츠 같은 곳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고, 1950년대 그의 지하실은 나치 문학에 파묻혀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소설 뒷 부분은 주인공 한탸의 고독하고도 행복한 삶이 산산조각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35년 동안 자신의 조그만 압축기에 종이를 넣어 짓누르는 것을 유일한 폐지 제거 방법이라고 믿어왔던 그는 어느 날 도시에 나갔다가 엄청난 크기의 수압 압축기가 자신이 가진 압축기의 스무 대 분량 일을 해낸다는 걸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또 우유와 콜라를 마시며 장갑을 끼고 여유 있게 일을 하는 젊은 노동자들을 보면서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깨닫는다. 결국 한탸는 삼십오 년 동안 일했던 그 지하실에서 삼십오 년 동안 함께했던 압축기에 몸을 던져 그가 구출하고자 했던 책들과 똑같이 생을 마감한다.
자신만의 세상에서 실존을 찾았던 그가 산업화의 희생양이 된 햔타의 모습은 마치 장차 4차산업시대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한데 어느 정치가는 기본 소득이라는 달콤한 과일을 들고와 맛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찌 마련한 것인지는 대책이 없다. 장차 우리는 인공지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설 것인가. 결국 잘 알고 잘 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미래, 자신의 플랫폼을 설치하지 못한 살아남지 못할 직업을 가진 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즈음 문명의 큰 흐름속에서 축적된 결과로 등장한 신기술을 과감히 접근하고 과감히 사용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결국 ‘인문학’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전략이 되고, ‘4차산업’이 그 도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결국 공생과 공존은 휴머니즘이다. 인간다움의 발로는 나뿐만 아니라 남도 있다는 자발적 휴머니즘 정신을 실천하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