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쯤 주말을 이용해 바지를 사러 백화점엘 갔다. 평상시 입는 사이즈의 바지를 골라 탈의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허리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다시 한 사이즈를 큰 바지를 입었는데 이것도 작다. 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다시 한 사이즈 더 큰 바지를 입었더니 그제서야 맞는다. 심히 당황스럽다.
2년전 건강검진을 했었는데 복부 비만에 고혈압, 고지혈증에 평소 걱정도 하지 않았던 간까지 문제가 생겨 꾸준히 운동량을 늘리고 걷기를 생활화 했으며 식이 요법까지 병행하여 체중을 줄였고 건강도 정상을 되찾았었다. 그 후로 3개월마다 피검사를 해서 건강을 체크해 왔었는데 며칠 전에도 피검사를 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어째 쫌 불안하다. 이번에 또 이상이 생기면 의사선생님이 뭐라고할텐데, 그동안 노력한게 수포로 돌아가니 참 집으로 돌아와 체중을 재보니 건강했을 때보다 엄청 늘어 있었다.
'저울이 잘못됬나? 나름 운동을 계속 해서 이럴리가 없는데?'
자꾸만 스스로 아닐꺼라고 몰아간다.
다시 아들 녀석 방에 있는 저울 위로 올라간다. 똑같다.
골똘하게 분석을 해본다. 평소 이 곳 저 곳 아픈 곳이 많아 진통제의 남용도 문제가 되었을 것이며 직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특히 과거에 아침은 굶고 제대로 점심을 챙겨먹지 못해 대충 김밥, 편의점 도시락 등으로 점심을 때우고 퇴근 후에 과식하는 잘못된 식습관이 건강을 해쳤을 것이다. 특히, 그 전 부서에서는 점심시간에 식사 후 빠지지않고 꼭 산책을 했었는데 지금의 부서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도 힘들다.
최근에는 부모님의 병환까지 겹쳐서 걱정이 하나 더 생겼다. 연로하신 아버지께 전화가 오면 또 무슨 일인가 겁이 덜컥난다. 바쁜 일이 있거나 한창 업무 중일 때 병원을 모시고 가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때론 "또야?" 하면서 한숨이 나기도 하는데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에 비하면 그 은혜의 천만 분의 일도 안되는 것을 때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버거워하는 나를 볼 때 나 역시 페르소나(persona)의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진다. 이럴 땐 내 마음의 무게 저울에 달아보고 싶다. 저울의 눈금이 착한 쪽으로 가있을까, 악한 쪽으로 가 있을까.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중년 남성은 여러 가지의 위기에 몰려 있어 보인다. 가장으로써의 책임감 위에 덧붙여진 아버지로써의 역할, 자식으로써의 책무, 회사에서의 압박 등 정신없이 살다 뒤를 돌아보면 '나'는 온데간데 없다. 더군다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젊은 감각에 따라가지 못하는 쉰 세대 취급을 받는다. 아버지 세대의 삶을 보며 교보재로 삼아 살아왔던 경직된 모습을 신속히 바꾸어야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시대는 초침처럼 변화해가는데 거기에 발맞추어 따라가려면 남들이 걸을 때 뛰어야한다. 그렇기에 늘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내면을 다독이면서 살아가기란 말처럼 간단하고 쉬운일이 아니다.
깊어가는 밤, 한 잔의 차와 함께 차분한 마음으로 사유의 시간을 가져본다. 지금까지 앞만보고 살아온 인생, 돌이켜보면 인생은 잠시 들렸다 떠나는 몇 개의 간이역 같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뒤돌아 보면, 금방 출발했는데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싶게 벌써 여러 개의 역을 지났고, 현실에 쫒기어 시간과 물질의 허상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은 천천히, 웃음을 잃지 않고 여유롭게 가고픈데, 차창 밖으로 펼쳐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여유도 없이 삶의 열차는 삶의 고단함에 떠밀려 종점을 향하고 있다.
마음의 저울을 꺼낸다. 선과 악, 어느쪽으로 저울의 추가 기울어져 있을까. 어느 포구처럼 생선을 담은 그릇에 슬쩍 물을 담거나하여 무게가 더나가게하여 돈을 더 받아 먹는 것처럼 눈속임의 저울치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돌아솔 뗘 아직까지는 눈금이 선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하여 다행이다. 젊음이 환하게 어둠을 밝히는 반짝반짝 형광등의 밝기라면 중년은 깜깜한 어둠의 공간에 극히 필요한 불빛의 가치이다. 가을 단풍처럼 빨갛고 노랗게 익은 원숙함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차분 준비하는 삶, 내 마음의 저울에 보여지는 눈금이 선의 궤적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되새기며 살아야겠다고 의지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