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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Oct 26. 2024

가을비

마음 에에이

[에세이] 가을비

한결


거칠게도 비가 오는 날이다. 잔뜩 부풀어오른 먹구름에서 삐져나와 지면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빗방울이 노면과 마찰을 일으키며 내는 파열음이 되어  사방으로 퍼진다. 쌀쌀한 기온에 몸을 무겁게 만드는 아침,  하필 이런 날 지방 출장이라니 은근히 심통이 난다.


'아직 감기도 안떨어졌는데 왠 비야. 추워죽겠구만'


세상사 내맘대로 되는 게 어디 하나 있던가. 비가 오는 날도 맑은 날도 모두 자연의 이치이거늘 날씨 탓을하며 투덜거리는 것이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불만이 생기는 것은 어린아이같은 투정 일수도 있으니 억지로 몸을 추스리고 출근하여 출장길에 나선다. 잠시 일을 보는 사이 벌써 신발과 바지가 다 젖었다. 여전히 비는 싸늘하게 내리고 찬기운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 들의 옷차림은 벌써 겨울을 맞았다. 겨울과 대적하려는 결심이 담겨 있는 듯 칭칭 싸맨 모습이 비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처럼 무거워보인다.


이런 날엔 햇볕 한 줌이 그립다. 드디어 몸을 덜덜 떨게하던 차가운 빗방울의 뒤로 잠시 해가 떴다. 지난 여름 징글징글 하도록 뜨겁게 내리 쬐어  손사래를 치게하던 태양이 구름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을 때 너무 반가운것은 가을의 때이른 추위가 내 마음을 간사하게 만든 결과일 것이다. 벌써 두꺼운 패딩과 전기난로를 꺼내야할 듯한 날씨, 그 옛날 은은하게 내리던 정겨운 가을 비가 아닌 처량하도록 차가워진 날카로운 비, 비가 내리는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비와 함께 들이닥치는 한기의 세찬 기세에 자꾸만 빼앗기는 옛날의 가을 정취를 안타까워한다. 여름비도 아니고 가을비도 아닌 겨울비스러운 매서움이 난데없는 지구 온난화가 만든 기상이변의 탓으로 돌린다면 이젠 사계절이 주는 당연한 기쁨도 없어질 징조인듯하다. 그토록 시원함을 바라던 여름은 사라지고 눈 깜짝할 사이 따스함을 원하는 시간이 되어 계절의 변화가 주는 기쁨보다는 빠르게 추위에 적응해야한다는 현실감이 여유없는 삶을 더 여유없게 만드는 듯하여 슬프지만 그나마 회사 정원에 있는 모과 나무에서 떨어져 풀밭에 뒹구는 열매를 보며, 단풍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대봉을 쳐다보며 그나마의 가을을 느낀다.


계절은 삶의 커다란 분기점과 같고 날씨는 자잘한 흐름과도 같다. 날씨를 내 마음 대로 조정할 수 없듯 우리의 삶은 조금 후의 미래도 알 수 없다. 맑고 아름다운 날씨를 바라지만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인생사 한 치 앞 일을 알 수 없는 것도 날씨의 변덕스러움과 일치한다. 마음 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잠깐 내리는 비 앞에서도 필요없는 심경의 흔들림은 들쑥 날쑥한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 짐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생각은 여전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내 중심의 마음 때문이다. 순응과 겸허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던져놓는 것은 비와 해 사이에서의 일희일비하고 매 순간  변덕스러운 감정을 갖고 살기 때문이기도하며 거부하고 싫어하는 것들도 필요하면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마음이 제자리를 잡을것이다.


이윽고 내리는 듯 그친 듯  밤이 내린다. 어릴적 옆 집 할아버지의 가랑가랑 가래끓는 소리가 들릴것 같은 적막함 속에 서서히 암흑이 내려앉고 하루종일 음울함에 짓눌렸던 마음을 한 켠으로 내려놓고 깜깜한 어둠을 더듬거린다. 비가 오면 맑은 날도 있을 것이고 또 비오는 날도 때론 필요하다.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되는 삶의 불순물들이 가을 빗방울에 싸여 축축했던 오늘도 날이 새면 다시 태양으로 바뀌어 뽀송뽀송하게 감싸줄 것이기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사색에 잠기는 여유를 갖고 계절의 순환도 잊을만큼 숨차게 살아온 시간을 조금은 쉬었다 가야겠다. 오늘을  맞이하고 내일이 찾아옴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고마움과 만족함을 깜빡 잊어버린 오늘, 사람 사는 게 늘 이런 것이라고 자위하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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