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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Nov 02. 2024

어머니는 여자였다

마음 에세이

[에세이] 어머니는 여자였다

한결


한가한 금요일 아침, 출근후 업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 주치의로 부터 전화가 왔다.


"보호자님, 어머니 배가 너무 아프다고 하셔서 피검사를 했는데 염증수치도 높고 큰 병원에가서 CT좀 찍어보셔야할 듯합니다"


다행히 어머니가 자주 다시는 병원은 요양병원 근처에 있어서 그 점은 좋다. 금요일 수업이 없는 아들에게 전화해 의사소견서를 받아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오라고하고 난 어머니 신분증을 가지러 부모님댁으로 달렸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려도 아들에게 소식이 없어 전화를 한다.


"아까 갔는데 언제 오니?"


"할머니 지금 화장하고 계셔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의사는 신속하게 병원을 가라고 했는데 아프다는 분이 한가롭게 화장을 하고 있다니 남의 속은 모르고 속에서 부화가 치민다. 드디어 도착하셨다. 어머니는 배가 아프다고 아이처럼 칭얼거린다.


"그렇게 배가 아프다면서 화장을 할 정신이 있어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예상대로 오전 진료는 대기자가 많고 오후 진료도 언제 될지 모른다고 한다. 의료대란의 덕이다. 응급실로 내 달렸다. 피  검사 결과 나오는데 1시간 30분, 복부 CT는 언제 찍을지도 모른다. 홧자는 계속해서 밀려들고 응급실 의사는 한 명이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오후 늦게서야 당남염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급히 염증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아야한다고 한다. 시술 후 항생제 치료를 해보고 효과가 없으면 수술을 해야한단다. 입원하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고 다행히 일반병실이 딱 2개 남아있단다. 이제 간병인을 구해야 몇달 전 아버지 입원 시에 간병을 해주신 아주머니께 전화를 하여 상황이 급하니 빨리 간병인을 구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요양병원에 전화로 퇴원을 부탁하고 아들을 보내 어머니가 쓰던 생필품과 공기침대를 가져온다. 대학생 아들 녀석이 금요일 아들녀석이 수업이 없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다. 천신만고끝에 입원을 시켰다. 주치의가 며칠 후 수술을 해야한단다. 젊은 사람들에겐 간단한 수술이지만  고령이다보니 걱정이다. 더군다나 폐가 좋지 않아서  잘못될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등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아침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먹은게 없으니 기운이 빠진다. 아버지를 만나 상황설명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궁금증이 생긴다.


'배가 그리 붓고 통증이 심한데 화장할 정신이 있으셨을까. 누구 하나 봐줄 사람도 없는데 그 급한 상황에서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가는데 화장이라니 ᆢ'


그 순간 떠오르는 단어는 '여자'였다. 팔십이 넘은 연세, 요양병원에서 외출을 시켰을 때도 미용실에 데려가달라고 하셔서 꼬박 꼬박 염색과 커트는 하셨고,  옷을 갈아입혀드릴 때에도 어머니는 아들앞에서 젖가슴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셨으며 기저귀를 갈 때도 아버지를 부를 뿐 늘 내 손길이 닿는 것을 챙피해하셨다. 이젠 여성의 관능미를 잃어버린 쭈글쭈글한 몸, 혼자 화장실도 못가는 처지임에도 어머니는 여자였다.  외출 해서 아버지를 뵐 때도 자꾸 집에 오고 싶다고 땡깡아닌 땡깡을 피우고 부축없이는 걷지도 못하면서 혼자 걸을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울 때는 꼭 어린 아이를 보는 듯해 답답하고 짜증이 나지만 기저귀 차기를 싫어하고 꼭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혼자 뒷처리하다가  수시로 넘어져 아들 속을 뒤집어 놓으면서도 어머니는 고상하고 품위있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봐주는 이가 없어도 늘 예뻐보이고 싶어하는 여자였다. 고집도 피우고 어린아이처럼 매일 볼멘소리를 하며 늘 아들 속을 뒤집어 놓지만  가뜩이나 병약한 몸인데 수술까지 가지 않고 얼른 회복되어 화장품도 사드리고 미용실도 모시고 가고 좋아하시는 음식도 대접해드리고 싶다. 집에 거의 다다를 즈음 어둑 어둑 저녁 그림자가 내리고 화급했던 하루가 지나간다. 좁은 병실에서 스트레스 받고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 달랠 길  없고 스산한 가을 바람에 더욱 추워지는 저녁,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을듯하다.

드디어 수술일이 되었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별거 아니니까 금방 끝나요. 잘 하고 오세요."

이 말외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그저 수술이 잘 되기만 바랄 뿐,수술히 잘 되서 중환자실 말고 입원실로 오셔야 하는데, 얼른 완쾌하셔서 다시 열심히 화장도 하고 염색도 예쁘게 시켜드리고 싶은데  기다리는 일만 남은 병원에서 보내는 카카오톡 문자를 주시한다. 톡이 왔다. 수술 시작이다. 평소 좋아하는 커피도 몇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맨 밥 넘기듯 목이 메이고 눈물이 핑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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