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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Nov 10. 2024

가면 놀이

마음에세이

[에세이] 가면 놀이

한결


어렸을 때 나와 동무들의 우상은 만화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가면을 쓴 정의의 사도였다. 얼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종이로 만든 가면에 노란 고무밴드를 끼워 귀에 걸고 보자기를 목 뒤러 둘러 맨다음 추수가 끝난 논에 쌓아둔 짚단 위나 동네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며 하루 종일 날아다니는 놀이를했다. 한 번은 높다란 짚단 단위에서 뛰어 내렸는데 거꾸로 떨어지면서 머리를 돌멩이 부딛쳐 피른 흘려 엉엉 운적도 있다. 여하튼 그 시절 우리는 때론  배트맨이었고 때론 스파이더 맨이었으며 늘 악과 맞서 싸우는 영웅이들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배트만과 스파이더맨 들이 꾸며낸 만화의 주인공이며 그들의 영웅담이 허구인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영화로 그들을 만나며 세상의 영웅이며 정의의 사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린 모두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려면 가면은 필수다. 즉, 좋게말하면 사회성을 갖추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솔직함을 감추는 것이 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적당한 가면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면의 폐해는 꼭 있기 마련인데 부서장 앞에서의 웃음, 동의,  예를 들자면 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쩔수 없이 회식에 참석하고 회식 분위기에 열심히 동조한다거나  상사가 아재개그를 남발할 때 재밌다고 기꺼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거나 과도한 웃음을 웃을 때는 꼭 나쁜 가면을 쓴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사에게는 아부로 포장하고  동료에겐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 이는 분명히 악당의 모습을 감춘 페르소나의 가면을 썼다고 할 수 있다.

회사 동료가 한 명있다. 이 사람은 불평을 입에 달고 산다. 극히 이기적이기도하고 회사 일이나 동료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먼저다. 그러나 부서장이나 기관장  앞에서는 회사를 위한 희생과 정열의 아이콘 처럼 행동한다. 옆에서보고 있으면 저러고 싶을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심하다. 그의 별명은 '불평왕'인데 왜 동료들이 자신을 꺼려하는 지를 모르는 것같다.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 자기가 조금 불편한 일이 생기면 앞에서는 괜찮습니다. 조금 더 일하면 되죠라고 하고 뒤돌아서서는 온갖 짜증과 불평이 담긴 문장들을 마치 연극 대사를 읊듯 뿜어댄다. 그는 올해 초 작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1년에 한 번 지급하는 성과급의 등급을 낮게 받았다. 불평왕은 자신이 업무에 충실하지 않았음은 생각지 않고 누구못지 않게 열심히 일했는데 왜 자신만 불이익을 받아야하느냐고 후로 약 삼개월간을 동료들에게 하소연하며 불평했지만 동료들은


"아 그렇군요 다음엔 잘 받겠죠"


" 정 그러시면 이의신청을하세요"


정도의 답에 그쳤을 뿐 진심으로 위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는 무슨 일을 하자는 말을 할때 말을 꺼내기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자기 스케줄에 맞추느라 조금이라도 손해다 싶으면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요즘은 갑질 신고라는 제도가 생겨 정당한 지시라도 몇 번이고 점검 후 말을 꺼낸다. 이쯤되면 그는  베트맨의 숙적인 조커나 펭귄맨 정도는 아니더라도 직장 분위기를 해치는 이기적인 인간임 틀림없다. 그는 가면을 거의 쓰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가면은 필요하기에 그 직원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직접 바늘로 찌르듯이 쏘아 붙이거나 하지는 않고 회의 시간에 공지사항을 전달하면서 알아 들으라고 넌지시 말을해도 그때 뿐이다. 하루 이틀 조용하다가 또 시작한다. 직장 생활을 하려면 끊임없이 나를 조직에 맞춰야한다. 조직이 구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면 구성원은 하기 싫어도 따라야하고 그래서 가면이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론 화가 나도 참아야하고 목구멍까지 분노가 차올라도 평정심을 유지해야할 때도 있으며 때론 드럽고 치사해도 미소로 승화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그 때 가면 놀이가 필요하다. 어렸을 때는 악당을 무찌르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멋진 가면을 쓰고 놀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여러가지 가면이 필요하다. 그대로의 내가 '본캐'라면 가면을 쓴 내 모습은 '부캐'다. 부캐는 회사에서, 가정에서, 모임에서 등  여러가지가 있으며 몇개의 부캐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더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본캐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가면 놀이에 집중하다 보면 나 자신을 잃어버려 본모습은 사라지고 위선적이 되기 쉽다. 중국의 변검술 처럼 하루에도 몇 개의 가면을 바꾸어 쓰는 세상, 자신의 본모습과 가면을 쓴 모습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적응력있게 무리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있다. 가슴 속에 이성과 합리성, 더 깊숙한 곳에 따뜻함과 순수, 연민 등 아름다운 마음을 지키고 살아야 가면도 쓸수 있다.


"  불평왕 씨. 싫어도 불평 좀 그만하고 짜증 좀 그만 내고 가면 좀 쓰세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지 않나요? 진짜 스트레스받습니다."


이 말을 내뱉고 싶어 지금도 목구멍이 근질근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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