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 그 때를 아십니까
한결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헬스클럽이 개장했다. 옆에는 목욕탕이 있는데 아파트 주민들은 일인당 만 오천원이다. 그런데 운동을 하든 않하든 목욕을 하든 안하든 가구당 한 명의 의무 부과로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헬스클럽은 동네 어느 헬스클럽과 견주어도 시설이 뒤 떨어지지 않아 꽤 만족스럽고 목욕탕은 동네 목욕탕 수준이긴 하지만 나름 이용할만하다. 요즘은 하루일과가 끝나면 집에 오자 마자 얼른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클럽을 간다. 런닝머신이 꽤 많지만 사람이많아 늦으면 자리가 없어 한참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운동이 낙이다. 사람이 없는 것 보단 많은게 낫다. 왜냐하면 남들이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은근히 경쟁심이 발동하여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하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목욕탕 한 번 가려면 큰 맘을 먹고 가야했다. 날은 춥고 목욕탕은 차를 타고 가기에는 가깝고 걸어서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에 있어 한참을 망설이다 가곤했다. 그렇게나 많던 목욕탕과 찜질방이 코로나 19사태이후 대부분 폐업을 한 것이 원인이다. 그러나 아파트 사우나는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있어 운동끝나고 바로가면 되어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세상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 단점이 하나 있는데 사우나를 하고 집에 돌아가면 급속히 잠이 온다는 거다. 대신 숙면을 취하게 되었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아침형 인간이 더 일찍 눈이 떠지는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어렸을 때 고향의 목욕탕은 딱 한 군데 시장 한 가운데 있었는데 길다란 굴뚝이 있는 커다란 온수탕 하나만 있고 샤워기는 커녕 뜨거운 물, 찬물이 각각의 수도꼭지에서 따로 나와 바가지로 받아써야했다. 그것도 그 당시에는 첨단 시설이었다.여름엔 냇가에서 목욕을 했고 겨울엔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은 꿈도 못꾸었다. 그나마 좀 산다하는 집 들만이 고무 다라이에 뜨거운 물, 찬물을 섞어 뒤 뜰이나 광에서 목욕을 했고 대부분 겨울철 목욕은 생략했기에 손등이나 팔꿈치를 보면 때가 쌓이고 굳어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 였다. 하긴 그땐 화장실도 재래식이었고 비데는 커녕 화장지도 없어서 얇은 달력 종이나 신문지 쪼가리를 손으로 비벼 뒷처리를 하던 때였으니 요즘같은 목욕시설이나 비데는 괄목할만한 기술의 발전이다.
운동을 마치고 염색을 위해 미용실을 간다. 염색약을 바르고 거울을 보니 벌써 세월의 질곡 만큼이나 내 이마에도 주름살이 깊게 패였다. 뽀송뽀송하고 매끄러웠던 얼굴은 어디가고 파삭 나이들어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앉아있다. 휴대폰으로 얼굴을 비추어보니 점 하나부터 수염 한 올까지 굳이 드러나지 않아도 될 잡티들이 선명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네게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옛 낭만을 가져가버렸고 시간의 흐름은 안정된 삶을 가져다 주었으나 꽃다운 젊음을 가져가 버렸다. 어렵게 살았던 옛 시절이지만 지금은 그때가 그립기도하다. 어쩌면 한 편의 동화같은 추억들, 집 밖으로 나가면 시멘트가 아니 흙바닥이었고 닭장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정원에 나무가 그득한 자연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빨리 변화했다. 집에서 외따로 떨어진 푸세식 변소에서 손으로 끈을 잡아당겨 물을 내리는 수세식 화장실로 또 비데가 설치되어있고 삐까번적한 욕조가 있는 화장실의 진화는 깜깜한 밤 무서움에 떨며 손전등을 비추며 변소를 찾아가고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볼일을 마치고 나오면 마치 쏟아질것만 같던 밤하늘 가득한 별빛 들을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편리한 세상에 살면서 그때가 문득 문득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점점 문명의 편리함에 젖어 이제는 산에 도토리를 따러, 나무를 하러가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일부러 등산을 하고 학교에 가려면 교통편이 부족해 십 여리를 걸어 다니던 걸음이 일부러 걷지 않으면 안되는 운동이 된 지금, 추억만이 애잔하게 남아 과거의 시간들을 울타리치고 있다. 과연 편한 것만이 좋은 것일까. 흙냄새를 맡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흐르는 냇물을 한 웅큼 목을 축이던, 닭장 속의 병아리 들에게 사료를 주고 마당의 가마솥에서 소여물을 끓이던 냄새가 마당 안을 메우던 그때가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