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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행복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아파트

한결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분수대도 있고 이 곳 저곳에 야외 휴게공간도있으며 인공폭포와 연못을 만들고 그 앞에 다리를 만들어 놓아 주민들이 즐길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곳에 '진경산수원' 이라는 푯말을 붙여놓았는데 이름은 실로 거창하다. 휴일 낮에 지나가다가 잠깐 보는게 전부이고 저녁에는 알록달록 불이 들어와 잠깐 눈요기를 하기에 제격인데 곳곳에 놀이터 가까이 작은 분수대를 설치해 놓고 그곳에 휴게터가 마련되어 있어 에어컨 바람이 버거울 때 잠깐씩 휴식을 취하곤 한다.


한번은 저녁에 개구리 울음이 우렁차게 들리길래 설마 개구리가 여기 있으려구 하는 의구심으로 휴일 낮과 밤에 가보았는데 개구리는 보지 못했다. 아마 풀숲에 스피커를 설치 해놓고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려주는듯 한데 그것도 정확치는 않다. 여하튼 도시의 어린 아이 들에게 개구리 소리가 어딘가. 어릴 적 서울에 살던 외사촌들은 우리집에 놀러와 벼를 보고 쌀나무라고 했을 정도로 자연과 동떨어져 지냈는데 그 옛날에도 그랬으니 아파트에 사는 지금의 아이들은 오죽할까. 살아있는 파충류나 곤충을 접하려면 아마 박물관이나 특별전 같은 이벤트나 있어야 접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개구리 울음소리라도 알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뒷 쪽으로는 모두 논이었는데 얼마나 시끄러운지 밤새 울어댔으나 그것도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정겨운 고향의 소리였고 개구리 울음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곤 했다. 낮에는 매미, 저녁엔 풀벌레, 밤에 개구리 소리는 내겐 아주 친근한 자연의 노래였고 잠자리, 여치, 방아깨비는 지천에 부지기수여서 좋은 놀잇감이기도 했다.


얼마 전 이다. 운동을 하기 위해 아파트 헬스 클럽엘 가는데 헬스클럽 앞 놀이터 근처 수풀에서 아이 들이 잠자리 채를 들고 곤충을 채집하고 있다. 제각기 채집망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데 거의 비어있었고 한 아이 채집망에 무언가 들어있어 무엇을 잡았나 보았더니 이름 모를 벌레가 들어있다. 하긴 온 천지가 시멘트고 나무라고 해봐야 조경때문에 심은 것인데 나비가 있을까. 메뚜기가 있을까. 아주 드물게 어디서 왔을지도 모를 잠자리 한 마리 잡으면 그날은 대박이다. 채집망 안에 파리가 안들어 있는게 다행인지 모른다. 올해 러브버그가 그리도 기승을 부리더니 지금은 대벌레, 미국 흰나방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기온이 높아짐에 따라 아열대기후의 해충도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론 그 흔했던 잠자리도 첩첩산중에나 가야 볼 수있는 귀한 몸이 되겠다.


도시는 손바닥만한 틈만 생기면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만들고 온 바닥을 시멘트로 포장한다. 사람도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곳에 어떻게 새와 동물, 곤충이 살 수 있을까. 아이들의 동심은 수돗물인지 지하수인지 모를 물이 순환하는 분수대에서 물을 맞으며 깔깔 대는 것이 전부다. 어쩌면 그 물에 피부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집에서 좀 떨어진 커다란 공원이라고 해봐야 나무 몇그루와 의자 들, 그곳에서 흐르는 냇가는 인공이다. 바닥 으로 물이흐른다. 그 안에는 물방개, 장구애비, 소금쟁이는 없다. 자갈을 버무린 시멘트 바닥에서 물놀이와 물싸움을 한다.


아파트의 저녁 풍경은 아름답다. 회색벽은 자취를 감추고 곳곳에 운치있어 보이는 가로등 불빛과 네온 불빛이 수면으로 반사되어 빨갛고 파란 형형색색으로 빛난다. 그러나 낮이되면 얼굴이 바뀐다. 어디서 갖다 놓았는지 모를 국정 불명의 망치와 끌로 깎아 만든 급조된 바위와 상쾌하지 않은 물 냄새, 둥둥 떠다니는 벌레들, 그리고 사람 들이 던진 쓰레기들로 보기 흉하다. 단지 마다 뜻도 모를 조형물을 설치하고 무엇을 만들었는지도 모를 자연을 흉내낸 가짜 들, 청소는 제때하는지, 지금은 만든지 얼마 안되어 깨끗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관리와 수리가 안되면 흉물이 될 듯하다. 낮과 밤이 다른 도시의 얼굴은 마치 자신의 이익에 따라 조삼모사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서 슬프다.


눈에만 반짝이는 분수대보다는인공조형물 몇개 보다는, 설치비용과 부대비용으로 아이들이 뛰어 놀수 있는 자연 학습장이든 주민들이 편히 쉴 수있는 제대로 된 야외휴게실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 폭포와 분수대 근처에 머물자니 모기는 기승을 부리고 눈이 즐거운 것보다 몸이 가려워서 못참겠다. 가뜩이나 모기는 날 너무 좋아하는데 계속 물고 빨고 하는 오늘 저녁은, 모기들이 단체로 마실 나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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