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에세이
[에세이] 여름 안에서
한결
아침에 일어나 보기에도 시원해 보이는 아이스 커피를 한잔 타고는 밖을 나가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진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더위가 아주 미세하게 누그러진것을 느낀다. 이제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는 걸까. 초록의 세상은 아직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아파트 두 개 동 사이로 보이는 하늘색이 오늘은 옅은 회색이다. 순식간에 공중을 떠다니는 뜨거운 공기 덩어리를 정확하게 맞추어 파열하듯 금새 주변이 뜨거워진다. 온 몸을 불사르고 순간 사라지는 불꽃같은 계절은 지금 잠을 깨었다
난 여름을 좋아한다. 추위를 싫어하는 체질이어서도 그렇거니와 요동치는 매미의 울음 소리를 사랑하고 커다란 나무가 드리우 는 그늘 밑에서 태양을 피해 콧망울에 맺힌 땀방울을 식히는 잠시의 휴식이 너무 행복하며, 돌아갈 수는 없지만 정열적인 사랑의 계절임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청춘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악의 종류가 있을 텐데 어떤 사람은 조용한 발라드, 어떤 사람은 째즈, 또, 어떤 사람은 신나는 댄스 음악을 좋아하고 고막을 찢는 메탈을 좋아하는 이도 있다. 여름은 어떤 장르일까. 생각해보니 여름엔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아침엔 경쾌한 왈츠, 한낮엔 고막을 찢는듯한 강렬한 헤비메탈, 저녁엔 부드러운 발라드, 별이 총총 밤하늘이 연주하는 음악은 클래식이다.
여름은 젊은 날로 빨려들어가는 계절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살릴 순없지만 여름은 지나간 시간 속으로 우리를 소환하여 다시금 푸르름을 느끼게 해준다. 간절한 사랑의 마법에 빨려들어가는 환상의 문 같은 계절,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고 사랑에 아팠던 계절, 여름이 있었기에 청춘이었기에 가능했었던 무모할 정도로 앓았던 성장통. 한낮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여름 밤, 무엇이든 불살라버릴 듯 잊혀지지 않는 불빛처럼 타오르는 서러움과 다친 마음을 여름이어서 이겨낼 수 있었다. 여름은 원래 덥다. 그걸 받아들이는게 싫은 거지 낮이 길어져서 저녁 늦도록 오후같이 해가 긴 시간의 여유를 주기도 하고 살랑 살랑부는 저녁 바람은 땀흘려 일하고 마시는 한잔의 맥주같은 여유로움을 선물한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몇방울 쯤이야 맞아 줘도 될듯 순간 주변이 시원해진다. 여름의 묘미다. 점점 굵어지는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간다. 거실은 천국이다. 에어컨 바람에 뽀송뽀송한 느낌을 받으며 식탁에 앉아 옥수수를 먹는다. 옥수수의 깔깔한 촉감이 목구멍을 자극하면 시원한 수박과 달달한 복숭아로 부드러운 목넘김을 시도하고 몸은 저절로 소파로 향하고 집 안도 바깥도 온통 여름이다. 올해의 8월도 이렇게 찾아온다. 멀리서 버스의 쿠르릉 소리와 오토바이의 굉음이 울리고 잠시 열기를 식힌 아스팔트는 다시 뜨거운 공기를 분출할 것이다. 매미는 비는 아랑곳 없다는 듯 여전히 자신의 본분인 울음소리를 쉬지 않고 뿜어 대고 있다. 바다의 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연신 추억을 실어나르고 연인의 서핑 보드는 사랑을 싣고 유유히 떠다닌다. 하늘 색 남방을 풀어헤치고 긴 머리를 흩날렸던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지만 여름이라는 계절 안에 남아 숨을 쉰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배롱꽃이 빨간 물감을 싱그러이 품고 나뭇잎 타고 떨어지는 빗물 소리에 수줍게 웃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하나의 여름이 옛날의 여름과 겹쳐 아침 풍경을 수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