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꾸는 꿈

게을러지고 싶어 8

by 냠냠


결혼을 앞두고 남편과 나는 각자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남편은 대기업 취업을 위해 서류를 넣고 시험을 보고, 나는 4학년 2학기 때 조기취업을 위해 동시에 사회생활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그때 남편은 1차 서류와 필기시험에는 모두 합격했지만, 신체검사에서 연이어 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열심히 자격증을 따고 공부하며 준비해 온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글뿐이었다.

남편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깨알같이 빽빽하게 써 내려갔다.

면접에서 사장님이 물었다고 한다.

"최 00이 누구예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번엔 꼭 붙을 거라는 걸.


남편은 최종 합격했다.

우린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펑펑 울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집안의 자랑이 되었다.

지금도 그때 내가 써준 남편의 이력서가 남아 있다.

얼마 전 가족 단톡방에 그 이력서를 올리자 아들이 말했다.

"이력서가 진짜 대단하다. 글씨도 내용도 완벽해."

그 말이 너무 뿌듯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때의 정성과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편이 첫 월급을 받던 날, 그 돈은 거의 전부 나를 위해 썼다.

지금 생각하면 내 아들이 그렇게 한다면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 모든 게 사랑의 표현이었다.

첫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야 했을 때,

나는 학교생활의 재미를 잃었다.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남편의 근무지로 달려갔다.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또 부산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무렵 나도 조기 취업을 했다.

남편은 '아반떼'를 구입했고, 토요일이면 내 직장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로 주말마다 여기저기 다녔다.

우리는 젊었고, 가진 건 없었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직장에 다니며 나는 내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과장님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가르쳐주셨고,

직장 동료들은 가족처럼 따뜻했다.

하지만 술자리가 가장 힘들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에게 "ㅇ샘 술 먹여야 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오갔다.


어느 날 소주 첫 입이 달게 느껴졌다.

그날은 다짐했다. "오늘은 끝까지 버텨보자."

결국 5차까지 갔고,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남자 동료들이 먼저 쓰러지고,

결국 우리 집 거실에서 모두 잠들었다.

그 뒤로는 "ㅇ샘 술먹이지 마"가 불문율이 되었다.


어느 날 과장님이 말했다.

"라면 10인분 끓여봐요."

양동이에 찬물을 가득 붓고 라면을 넣었다.

결과는 맹탕이었다.

그날 이후 라면은 내 담당이 되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누구보다 라면을 잘 끓인다.

실수는 늘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3년 뒤,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이를 갖고 싶기도 했고, 병환으로 힘들어하던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IMF가 터졌다.

남편이 다니던 대기업이 부도가 났다.

6개월 동안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임신한 나는 새벽마다 엄마 일을 도왔고, 병원에도 혼자 다녔다.

남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우유 배달이라도 해야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말했다.

"공부해. 돈 걱정은 하지 마."


그게 내가 남편에게 두 번째로 힘을 준 날이었다.

첫 번째는 취업할 때,

그리고 두 번째는 IMF 때였다.

그 시절을 지나며 우리는 진짜 부부가 되었다.


사랑이 현실이 되었던 그 시절,

나는 내가 믿었던 사람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꾸는 꿈, 그건 우리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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