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지고 싶어 7
가족의 맛
엄마는 요리를 잘하시진 않았다.
그래도 일요일마다 마당 평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으면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식탁이 펼쳐졌다.
대형 해파리냉채, 한 솥 가득한 카레, 김밥 100줄.
먹성 좋은 우리 가족은 그 단순한 음식들로 한껏 행복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면
온 가족이 하루를 정해 부산 바닷가로 놀러 갔다.
김밥과 간식을 챙겨 하루 종일 수영하고 놀았다.
여름이 끝나면 온몸의 껍질이 벗겨질 만큼
햇살은 우리에게 오래 남았다.
겨울은 없었다.
춥고 쉴 틈이 없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계절은 늘 여름이었다.
운동회의 날
운동회는 우리 집의 축제날이었다.
언니와 나는 항상 반 릴레이 선수였고,
학교 육상부 대표였다.
운동회의 마지막 꽃, 릴레이에서
우리가 트랙 위를 달릴 때면
엄마와 아빠는 그날만큼은 일을 접고
김밥과 삶은 밤을 챙겨 운동장으로 오셨다.
우리가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면
그 순간만큼은 가족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그건 1년에 한 번뿐인 우리 가족의 진짜 휴일이었다.
아빠의 장기와 인생의 승부
아빠는 바둑과 장기를 좋아하셨다.
사람들과의 유일한 소통이자 하루의 낙이었다.
집에서도 그걸 놓지 않으셨다.
언니와 나를 앉혀놓고 장기와 바둑을 가르치셨다.
언니는 금세 실력이 늘었고,
아빠는 늘 언니에게 한 판 하자고 했다.
하지만 언니는 성격이 강했다.
싫다고 하면 끝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결국 나와 두셨다.
나는 하기 싫어도 했다.
그 덕분일까.
대학 때 나는 6개월 동안 바둑 강사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영화 승부를 보며
아빠가 좋아하시던 사람들과 장면이 나와서
유독 가슴이 찡했다.
용어를 알아듣고 긴장감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아빠는 고등학교 때까지 씨름을 하셨다.
그래서 TV에서 씨름이 시작되면
채널권은 무조건 아빠 차지였다.
언니는 토요명화와 드라마 브이를 보고 싶어 했지만
항상 졌다.
그만큼 아빠의 씨름 사랑은 남달랐다.
이만기, 이준희, 백두장사, 천하장사.
그 이름들은 지금도 익숙하다.
다정한 아빠와 강한 엄마
엄마와 아빠는 장사를 하셨지만
단 한 번도 우리 세 딸에게 욕을 하지 않으셨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아빠는 친구처럼 다정했고,
엄마는 언제나 우리 편이었다.
아빠는 늘 말했다.
"여상 가서 은행 취직해라."
나는 기가 막혀 물었다.
"왜요?"
그때 엄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했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라."
그 한마디로 모든 게 해결됐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인문계로 갔다.
엄마의 그 결정 하나가
우리 세 자매의 인생을 바꾸었다.
언니는 약사가 되었고,
동생은 교사가 되었고,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결국, 엄마의 믿음이 우리를 만들었다.
친구와 나
글을 쓰다 보니 잊고 있던 감정들이 자꾸 떠오른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친구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다만 내가 그들을 밀어냈던 것이다.
나는 나보다 잘하고 배울 게 있는 친구만
곁에 두려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박물관 관장이 되었을지도 모를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정말 친해지고 싶어 했다.
매일 아침 1등으로 학교에 도착하는 나를 따라
같은 시간에 도서관에 오기 시작했다.
고3이 되어 반이 달라졌는데,
어느 날 내 책상 위에 예쁜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그 친구가 등교하자마자 내 자리에 두고 간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학 때, 그 친구가 내가 남편을 소개하던 자리에서 울었다.
그때도 나는 그 친구를 가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그때의 나는 외로움을 참는 법을 몰랐던 아이였다.
그래서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밀어냈던 것 같다.
이제야 알겠다.
사랑을 주는 사람보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게 더 용기 있는 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