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의 시작

게을러지고 싶어 6

by 냠냠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


지금의 남편과의 첫 만남 이후,

우연처럼 몇 번 더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특별한 감정은 없었는데

어느 날 우리 과 동기에게

“괜찮은 선배가 있다”며

멀리서 남편을 가리키며 소개해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선배와 나의 발걸음이 계속 겹쳤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연스레 함께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 사이는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마음을 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매일이 새로웠고 설렘으로 가득했다.


나를 가꾸는 즐거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패션과 화장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작은 손거울을 늘 들고 다니며

머리카락을 다듬고 립글로스를 바르던 나.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얼마나 사람을 반짝이게 하는지 처음 알았다.


남편은 내 첫사랑이자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사랑이다.


잊히지 않는 첫 짝사랑


그래도 내 인생의 첫 짝사랑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3 때까지 이어진 김○○이다.

지금도 가끔 보고 싶다.

똑똑하고 운동도 잘하고,

내 기준에서 완벽한 아이였다.


대학 시절 남자 동기에게서

그 친구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그 자식은 사람이 아니라 천재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기뻤다.

내가 좋아했던 그 시절의 소년이

여전히 멋진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게

왠지 자랑스러웠다.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보고 싶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유명해진 모습으로

어디선가 그의 이름을 듣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그 시절의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 속의 어린 나


‘나는 어린 시절 기억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점점 잊고 있던 조각들이 떠오른다.


나는 수집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가난해서 부모님께 원하는 걸 마음껏 말할 수 없었지만,

그게 이상하게 괜찮았다.


옷도, 가방도, 책도

모두 연년생 언니의 물건을 물려받았지만,

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16절 노트에 만화 캐릭터를 그려서 오려내고

테이프로 코팅을 해 책갈피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작은 상자 하나에

그걸 ‘보물상자’라 이름 붙여 차곡차곡 모았다.


인형이 없던 시절엔

그림으로 인형을 그리고 옷을 입혀주며 놀았다.

의자에 이불을 씌워 ‘동굴집’을 만들고

동생과 그 안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그때의 나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완성하던 아이였다.


골목대장의 얼굴


이렇게 보면 나는 꽤 여성스러운 아이였지만,

사실은 골목대장이었다.

남자아이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며

진심으로 놀았다.


아직도 기억난다.

박○○이라는 남자아이는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가 가져온 구슬과 딱지로 따온 것들을 주며

“이건 네 몫이야.” 하며 건네던 내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활발했고,

누구보다 자신감이 있었다.


드라마 속 당찬 여자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보면

이상하게 끌리는 이유가 있다.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지 못할 몇 장면들


물론 그 시절이 늘 행복했던 건 아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가족이 모두 집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

아무도 나를 데리고 나가지 않아

혼자 기어 나왔던 기억.


공사판 함바식당을 하던 부모님을 따라갔을 때,

아저씨들이 피우던 담배가 신기해

버려진 꽁초를 입에 물려던 순간

엄마에게 들켜

플라스틱 바가지로 맞았던 일.


“입에 갖다만 댔는데…”

그 일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엄마가 친척들 앞에서 이야기하며

“우리 딸, 섬머슴아야.” 하셨다.

그때마다 너무 싫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참 씩씩하고 건강한 소녀였다.


새 집, 새로운 시작


중학생이 되던 해,

드디어 우리 가족은

첫 ‘내 집’을 갖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지으신 집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팔렸던 그 집을

부모님이 다시 사셨고,

그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세 손녀의 도시락을 싸주셨고,

엄마와 아빠는 새벽 세 시에 출근하셨다.

일요일을 빼곤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사는 게 세상의 당연한 모습이라 믿었다.


사랑을 하면서

잊고 있던 어린 나를 하나씩 떠올렸다.

그 시절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든 근원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이전 05화수영선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