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선수세요?

게을러지고 싶어 5

by 냠냠

- 자유라는 이름의 시작


너무 오랜만에 어린 시절을 기억해 냈다.

50대인 지금,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대학 때부터다.


고등학교까지의 나는

공부가 힘들었고 학교생활은 외로웠고,

엄격한 부모님 아래에서

학교, 집, 도서관만 오가며 살았다.

그 삶을 벗어난 ‘대학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자유였다.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불리던 시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으로 한 남자 동기와 함께 앉았다.

잘생겼고, 내게 예쁘다고 말했다.

나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의아했다.

‘내가 예쁘다고?’

뽀글 파마머리에,

겨울이라 볼은 빨갛게 얼었고,

통통하던 내가 뭐가 예뻤을까.

아마 그 친구도 첫 연애라 그랬을 것이다.


대학생이 되니

친구가 부르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비가 오면 영화를 보자는 친구 덕분에

그 시절 개봉한 영화는 거의 다 봤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누구와도 ‘손을 잡는 것’조차 어려웠다.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면

온몸에 닭살이 돋고 도망쳤다.

그만큼 내 안의 경계는 높았다.


그래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은 즐거웠다.

공대생 남자 동기 셋과

같은 과 여자 친구 둘,

다섯 명이서 늘 붙어 다녔다.

스포츠 과목에서 볼링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점수를 매기러 이동할 때면

남자 동기들이 내 공을 대신 쳐줘서

A를 받았다.

그 시절, 그렇게 소소한 일들이 행복이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다가온 사람


그러면서도

서로의 연애 사업은 바빴다.

소개팅 자리에서 제임스 딘을 닮은 남자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외모는 출중했지만,

일어서보니 내 눈높이보다 키가 작았다.

‘아, 깜짝이야.’

그때의 나는 단순하고 솔직했다.


그 후 동문회와 엠티,

여러 행사 속에서

자연스레 선배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중 한 선배는

무작정 전화해서 “나와요”라고만 말하곤 했다.

처음엔 그저 선배니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점점 불쾌해졌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그런 부름에 나가지 않겠다고.

할머니께 “엄마한테 아직 안 들어왔다고 해 주세요.”

그렇게 부탁하고,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나가줘.”


그날 술자리는 1차, 2차, 3차로 이어졌다.

브루스 타임에

그 선배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지만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때 옆에 있던 후배가 말했다.

“그럼 나랑 나가자.”

그리고 우리는 함께 춤을 췄다.


신기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았는데,

이상하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남편과의 첫 시작이었다.


- 우연처럼 찾아온 재회


시간이 지나,

학과방을 나서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저 기억 안 나세요?”

그때 그 후배였다.


반가운 마음에

비싼 캔커피 하나를 사서

그가 공부하던 자리 위에 올려두고 나왔다.

그 뒤로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단체 과팅을 주선하자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날은 우리 과 ‘퀸카 10명’과

상대편 공대 복학생 10명이 모이는 큰 자리였다.

날 믿고 나온 동기들에게 괜히 미안했다.


술자리가 이어지고,

왁자지껄한 소리 사이에서

그 후배와 자꾸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이서 살짝 자리를 빠져나왔다.


밖의 공기는 싸늘했고,

불빛은 유난히 따뜻했다.

우리는 작은 술집에 들어가

둘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이렇게 편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 잘못된 만남이라 불렸던 우리


그날 이후 우리는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 관계는 곧 선배들의 눈에 띄었다.

남편은 원래 그들과 가까운 후배였고,

그들은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선배들이 남편을 따로 불러 말했다.

“괜히 오해 사지 말고,

그냥 원래 선배와 다시 잘되게 해라.”


협박은 아니었지만,

그 말의 무게는 충분히 느껴졌다.

그 후 남편은 나를 찾아왔다.

“그 사람들 말을 들었어.

하지만… 난 그냥 너를 선택했어.

이제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아.”


그 말이 다였다.

단호했지만 따뜻했다.

그 어떤 설명도, 변명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확신하는 목소리였다.


나도 그날은 단호했다.

“난 그 선배랑 사귄 적도 없어.

오해는 오해야.”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내 자존심과 진심이 다 들어 있었다.


남편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웃었다.

그 미소가 오래 남았다.

그때 이미 남편은

나를 ‘여자친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사람,

배우자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모두가 ‘잘못된 만남’이라 했던 우리.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


- “수영선수세요?”


나중에 남편에게 여러 번 물어봤다.

“그때, 내 첫인상이 어땠어?”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수영선수세요?”


파마머리에 흰 셔츠를 입은 나는

어깨가 조금 넓고, 얼굴은 발그레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매일 아침 등교 전에 수영을 했다.

엄마 일을 새벽에 나가 도와주는 대신,

“수영을 보내달라.”

그게 내 조건이었다.


물속에서 몸이 가벼워질 때마다

마음도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다이어트를 핑계 삼았지만

사실은 그 시간이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공간,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는 그 고요가 좋았다.


그리고 수영을 마치면

머리를 예쁘게 말리고,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었다.

그땐 꾸미는 게 즐거웠다.

거울 앞에 서면 ‘이 정도면 괜찮지’ 하며 웃곤 했다.

살짝 통통했지만,

그게 오히려 내 매력이었다.


술자리에 가면

나는 늘 사람들이 먹기 좋게

오징어나 노가리를 잘게 찢어 놓았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유독 남자 선배들이 나를 좋아했다.

그땐 그냥 ‘내가 사람들 챙기는 걸 좋아하나 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내 방식의 애정 표현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내게 “수영선수세요?”라고 묻던 그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냥… 열심히 사는 학생이에요.”


말속에는

예쁘고 싶었던 나,

사랑받고 싶었던 나,

그리고 세상 앞에서

조금씩 나로 살아가고 싶었던

그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짧은 한마디가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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