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지고 싶어 4
- 내가 기억하기 시작한 어린 날들
문중의 종손인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딸만 셋을 낳았다.
그 시절, 그것은 대역죄였다.
셋째가 태어나던 날,
엄마는 이불을 꼭 감싸 쥐며 울음을 삼켰다고 한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이 막히듯 울음을 가슴속으로 눌러 담았다고 했다.
그날의 엄마는 세상에 용서받지 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울었다.
나는 둘째였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늘 눈치가 빨라야 했고,
엄마의 마음을 먼저 읽어야 했다.
8남매의 장남이었던 아빠는 무능력했다.
종손으로 귀하게 자라
무엇 하나 끝까지 하지 못했다.
일에는 끈기가 없었고,
술에는 약하지 않았다.
그런 아빠를 시기하던 삼촌들은
그 질투와 원망을 엄마와 우리에게 돌렸다.
술만 마시면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
연탄집게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
“쓸모없는 것들…”
그 말과 함께, 겨울밤의 공포가 시작됐다.
엄마는 우리 손을 잡고
맨발로 도망쳤다.
담벼락 뒤에 몸을 숨기고
삼촌들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면
뒤집어진 가구와 깨진 그릇,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겨우 잠을 청했다.
고모들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를 비난하고,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끝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엄마는 늘 일을 했다.
살기 위해서,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아빠는 그저 명함만 내밀고,
엄마가 번 돈으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술만 먹으면
엄마를 두들겨 팼다.
그 속에서
엄마는 우리를 지켜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다.
공부만이
엄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엄마는 폭력과 전쟁 같은 삶을 견디며
딸 셋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그 치열한 세월 끝에서,
내가 첫아들을 낳았을 때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야 내 손에도 아들이 생겼네…”
그 말을 하며
엄마의 눈가가 떨렸다.
그때의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 같았다.
이제야 생각난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그 공포의 시간들이.
그래서 그동안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일 년에 제사만 열두 번은 넘었던 것 같다.
제사 음식 준비를 할 때면
나는 늘 튀김을 맡았다.
언니는 하기 싫어했고,
동생은 다치니까,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불렀다.
“너는 손이 야무지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뜨거운 기름 앞에 섰다.
손등에 기름이 튀어도, 화상을 입어도,
그냥 참았다.
그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의 심부름도 내 몫이었다.
시장에 다녀오고, 잔심부름을 하고,
손님이 오면 눈치를 보고 먼저 일어났다.
그게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둘째인 나는
늘 차별대우를 힘들어했고,
이 집을 떠나고 싶었다.
언니는 집안의 자랑이었고,
막내는 귀여움을 받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늘 ‘없는 듯한 존재’로 남았다.
나는 가끔 엄마를 피해 도망가고 싶었다.
엄마의 삶이, 그 끝없는 고단함이,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두려웠다.
엄마를 미워한 건 아니다.
그저, 그 삶이 내 미래가 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멈추면 그 힘듦이 내게도 스며들 것 같아서.
그럼에도 도망칠 수 없었다.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나면
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대신,
버티는 법을 배웠다.
그게 나의 생존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부지런함으로 슬픔을 덮는 법을 익혔는지도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나는 내 안의 그 아이를 꺼내본다.
무섭고 아팠지만,
그 아이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그 아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