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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Mar 12. 2023

무심한 행인을 바라보는 일

언젠가 추억은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라고 적었다. 사람에 대한 아쉬움은 참 많은데, 맘처럼 연을 이어나가긴 쉽지 않다. 갖은 이유로 사람을 떠나보냈다. 오랜 연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기적처럼 느껴지곤 한다.


누군가에 대한 흥미가 귀하다는 걸 올해 조금 알았다. 답장할 수 없는 연락들이 많았다. 그들이 충분히 좋은 사람임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이 회신을 망설이게 했다. 망설이다 보면 적절한 때를 놓치고 만다. 때를 놓치면 더이상 연락을 하는 일은 두려워진다.


요샌 무언갈 느적느적 하는데에 열심이다. 가장 좋아하는 건 느적느적 책 읽기다. '열심'이라는 건 그래도 책을 갈망한다는 것이고, '느적느적'은 한 권도 채 끝내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변명이다. 무작정 벅차게 앎을 늘려나가는 삶보단, 조금 변명할 수 있는 삶이 좋은 것 같다. 사실 '좋다는 것' 마저도 변명이긴 하다. 그냥 그런 삶이 편하다.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을 두 달째 읽고 있다. 미뤄둔 고전을 읽는 것도 참 벅찬 일이다. 어느 날인가 또 카페에 앉아 느적느적 읽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파트를 읽고, 책을 덮었다. 이야기가 너무 큰 탓이었다. 책에 묘사된 빵 한 덩이가 목구멍에 퍽퍽하게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꾸역꾸역 삼키다 눈물이 났다.


친구는 좋은 소설을 읽고 고개를 들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세상에 있는' '책과 나만이 존재한다는' 느낌 정도로 표현하면 맞을까. 무튼 그런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정말 세상은 조금 달리 보였다. 카페는 통창이었고, 고개만 들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1월이었다. 패딩에 푹 잠긴 채 걸어가는 사람을 보며, 한창 추울 때만큼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목도리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무심히 앞만 보고 걸어갔다.


작년 내게 가장 중요한 단어를 꼽자면, 타자였다. 앞서 언급했듯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하면, 언제나 의문이 남는다. 조금만 달라졌어도 달랐을 것을, 아무것도 변하지 못한 채 인연은 끊어지곤 했다. 타자성에 대한 방대한 담론들이 그 의문이 주는 심적 고통을 증명하는 듯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알고 싶어도, 다 알아야겠다는 생각 또한 무례하다.


긴 시간을 하나의 담론을 파헤치는 데 몰두하다 보면 어느샌가 벽을 마주한다. 이 사람 얘기를 읽다 고개를 끄덕였는데, 또 저 사람 얘기를 듣자니 그럴듯하다. 또 그러다 보면 아무 얘기도 해낼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나를 발견한다. 이미 세상에 다 나온 얘기인 것만 같은 허무함이다. 타자에 대한 담론 또한 그랬다.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다가는 또 한창 신나게 떠들고 다녔던 나다. 그러면 조금은 허무함을 달랠 수 있다.


그럼에도 '아닌 게 아니라 그거였군.'싶을 때가 있다. 아닌 게 아니란 건 이중 부정이니 그게 맞다는 걸 의미하고, 한편 아닌 줄 알았던 것이 아니지 않았단 걸 의미한다. 무심히 지나치던 일상에 '담론'이라 일컬어지는 거창한 지식들이 이미 배어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다. 뜬구름을 저 멀리에 두고도 어쨌건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 비슷할라나. 에에올에서 조부투파키가 지식의 무한에 도달해 삶의 무의미를 깨닫고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처럼.


그는 무심히 걸어갔을까. '무심히'는 온전히 내 입장에서 만들어진 언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파트는 낯선 타인에게서 받는 위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길을 가는 행인에게도 목도리 하나쯤 건네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그 마음을 뒤로하고 그저 걸어가는 행위에 '무심하다'는 평가를 내린 이유였을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타인의 말과 행동을 중립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언을 받은 적이 있다.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누군가를 오해하는 것만큼, 무언가를 중립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 또한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도 그런 게 따뜻하게 난방이 돌아가는 카페에 앉아 좋은 소설을 읽고 추운 바깥을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타인과 관계하는 건 그만큼 착각하기도 쉽고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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