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Aug 15. 2023

다정한 고나리질

*사진은 글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맞고 틀림의 영역이 아니기에, 타인기본적으론 그대로 두어야 할 존재라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종종 누군갈 애정하는 마음은 다른 것들 중 몇 가지는 나와 닮아있다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나. 확언할 수 없어 이런 마음을 착각이라고 적어보자면, 그 착각은 차츰 커져 타인을 나와 동질적인 존재로 생각하게 하는 기저 된다.


고나리질이 어원을 검색해 보니, '관리'를 빠르게 적어 발생한 오타라고 한다. 그렇담 고나리질은 나와 동질적인 존재인 타인을, 내가 나를 관리하는 것처럼 쥐락펴락 하고자 한다는 선언쯤일까. 경계를 넘어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주입하려는 시도일까. 생각해 보자면 그럴 마음까지 먹었다가 이내 말을 삼켜버린 때도 있고, 굳이 굳이 얘기를 꺼내 선을 넘어버린 적도 있다.


누군가 내게 고나리질을 건넨 순간엔 어땠던가? 마찬가지로 어느 날엔 애정 어린 충고를 받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다가도, 또 어느 날은 지긋지긋하다며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돌아 생각했을 때 그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하면 코 끝이 찡해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쨌건 그 맘은 나를 향해 있다는 걸 알기에.


"그럴 수 있지" 보다 "이런 건 어때?"가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기본적으로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관계에서의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한 발짝 나아가 내가 세워둔 경계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움직임, 그 움직임이 필요한 순간이겠다. 나를 보호하려 세워 둔 경계들이 되려 나를 외롭게 하는 날. 그런 날이면 나는 고나리 친화적인 사람이 된다. 군가 내가 주저하는 동안, 한 발짝쯤은 먼저 넘어와줬으면 싶은 마음로.


물론 타인을 타인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것의 대부분은 폭력의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당신을 적대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타인을 공격해야 할 상대로 둔다기보단, 우리의 다름은 타협의 여지가 없이 완벽히 다른 것임을 천명하는 차원의 적대. 우리는 동질적일 수도 있고, 서로를 동질적이라 착각할 수도 있지만, 끝내는 그것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럼 우리는 별다를 거 없이, 경계를 넘어 확인한 차이를 다름이라 인정하고, 그 다름을 존중하고, 경계를 넘고자 했던 그 마음까지만 알아주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관리'하고자 했던 욕망, 타인을 통제하고자 하는 일방향의 폭력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닮아 있음에 끌림을 느끼고 심지어 동질 할 것이라는 착각에 관계를 시작하기도 한다. 인간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인간적인, 그래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착각이다. 그러니 적어도 고나리질의 기저에 다정함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때도 있다. 적어도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심한 행인을 바라보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