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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Dec 10. 2023

특별하지 않음으로써 특별한

고전은 사전적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다는 건 고전이 보편의 정서를 다루고 있음을 의미하고, '모범이 될 만한'은 그중에서도 으뜸이라 할만한 대표성을 뜻한다. 


그러니 고전 소설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가장 정제된 언어로 담아낸 한 편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고전 소설을 읽는 건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나는 환기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거하는 행위에 가깝다. 다시금 삶에 발을 붙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 세기 전에 살아간 타인이 현재의 내가 겪는 실패와 좌절을 상상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된다. 작가의 직접 경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긴 시간을 건너온 타인의 불행으로부터 위안을 얻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촉발된 불안은 그것이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맥박질을 멈춘다. 


나를 특별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낯부끄럽지만, 내 삶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긴 어렵다. 불안의 대부분은 그런 것들이다. 현실이 바람을 따라오지 못할 때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고난과 역경을 물리치고 끝내 해피앤딩에 다다르는 권선징악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럴 때면 고전 소설을 찾는다.


실패와 좌절의 역사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오히려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만 한다면 그 수많은 주인공 들은 커다란 부담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결말을 지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별함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오는 좌절은 덤이다.


고전 소설 속 주인공은 비단 해피엔딩만을 맞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주인공 단 한 사람뿐이던가. 나도 주인공이 아니고 당신도 주인공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특별함의 서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작은 고난에 픽 쓰러질 수도 있고, 불안에 떨다 좌절해도 괜찮다. 꼭 그것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쟁취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해피엔딩 주인공 클리셰보다야 더 특별한 우리의 보편적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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