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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Jan 03. 2024

그 시절, 우리는 모두 H.O.T. 였다

1986년생과 2017년생도 하나 되는 <캔디>

2013년 여름에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끝내고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 밥 벌어먹고 살 일을 찾던 중, 그래도 아직 쓸모 있다 여겼던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활용해 공립유치원 방과후과정 강사로 취업에 성공을 했었다. 그 당시 가요계를 강타... 까진 아닐지 몰라도 꽤 유행했던 노래가 있었다. miss A의 Hush였는데 무대에서 춤추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꽤 매력 있게 느껴져 출퇴근길에 열심히 듣곤 했다. 사람 마음 크게 다르지 않기에 그 모습은 유아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여자 유아들(당시 만 5세- 유치원 졸업 직전)이 벽에 어깨와 등을 살짝 기댄 채, 오른손 검지 손가락만 살짝 들어 본인 입술 위에 얹어 "허쉬 허쉬 허쉬 베이베 (정확히 허쉬!라고 발음했다)"라고 가사에 정확한 멜로디를 붙여 살짝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던 그 모습에 퍽 충격을 받는 '말세야 말세'라고 생각만 하며 지나갔더랬다.


올해 6월쯤에는 갑자기 우리 반의 남자유아가 (만 5세)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무슨 노래 좋아해요?"

"나? 요즘은 옛날 노래만 듣는 거 같네. 00은 무슨 노래 좋아하는데?"

"뉴진스의 하입보이요, 크크 크큭."

"오, 유튜브 좀 보시나 보군요!"

"흐, 사실 뉴진스 하입보이보다는 요새 전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가 좋더라고요. 선생님은 이 노래 알아요?"
"음, 아니 진짜 처음 들어봤어..."
"아, 그럼 한 번 들어봐요. 꽤 들을만해요."

한두 명의 유아만 가요를 듣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가요를 즐겨 듣는다. 해외여행을 앞둔 유아의 입에서는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이 나오고, 교사에게 노래 추천을 하기도 한다. 그것도 가요를.
2013년의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 충격을 받은 나란 교사는 전이활동 시간에 동요를 강박적으로 틀었고 놀이와 관련된 최신 동요(?)도 불러봤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전히 유아들의 귀와 입에서는 가요가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한 여자유아가 내 마음대로의 날을 계획하며 춤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춤공연이라... 벌써부터 망측한 춤과 가요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으나 최대한 침착하게, 아무 표정과 의견 없이 유튜브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공연 낚시를 시작했다.

함께 유튜브를 헤엄치며 악기공연, 노래공연, 춤공연, 수화공연 등을 다양하게 제시하였으나 유아는 초지일관 가요춤공연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 망했...'


그때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내 시절의 가요.  <캔디>

최신유행곡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고, 그럴 시기도 아니라 생각했기에 절충안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차마 지금 유행하는 가요로는 춤공연 못하겠어, 내 마지막 양심이랄까. 혹시 <캔디> 들어본 적 있어? 우리 음악줄넘기 때 한 번 했던 곡. 그걸로 하는 게 어때?"

"오, 좋아요!"


맑은 눈의 유아는 흔쾌히 허락을 했고, 우리는 그날부터 조금씩 <캔디>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유튜브'라는 훌륭한 춤선생님이 있었으니까.

아니, 근데 춤을 추면 출수록 너무 신나는 거다. 그 시절의 감성과 체력이 살아나는 건지, 아무리 기운이 없어도 캔디 춤을 연습할 때는 펄펄 날아다녔다. 아웃백을 오픈한 유아들이 신청곡도 틀어준다길래 (교실 내 태블릿으로) 충동적으로 '터보'의 <스키장에서>를 틀어 놓고 함께 춤판이 벌 어질 정도로 흥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우린 공연을 끝냈다. 공연을 위한 희생양(?)으로 동생반을 초대했는데, 무려 클럽 H.O.T. 의 하얀 풍선을 불어왔다. 아놔, 이런 감동이... 뭘 좀 아시는 선생님.


최근 학부모님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물어보시는 게 있다.

"요즘 집에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길래 들어보니 <캔디>더라고요, 유치원에서 뭐 하나요??"


맞습니다, 어머니... 뭘 하고 있어요. 캔디 공연을요.

제가 시작한 건 아니고요, 전 좀 거들었을 뿐이랄까요.

그런데.. 제가 너무 신나네요, 한 번 더 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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