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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Apr 10. 2024

내가 그리던 풍경 속의 가족

킥보드를 타는 아이, 함께 달리는 엄마, 지켜보며 웃는 아빠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이벤트를 좋아한다. 출근-> 유치원 일 -> 퇴근 -> 요가(운동) -> 집(육아) -> 집(집안일)으로 반복되는 하루하루는 동물원에 갇혀 사는 호랑이가 된 거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반복되는 하루 속에 살짝 변하거나 추가된 코스에 기분이 좋아진다. 예를 들면 첫눈이 내린 날에는 주말에라도 조개구이를 먹으러 간다던가,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에 공원으로 나들이를 간다던가, 석양과 바람이 끝내주는 날이면 퇴근 후에 야장에서 맥주를 마신다던가 하는 작은 즐거움들. 


주로 광고에서 봤던 거 같은데..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봄이면 그렇게 공원을 갔다. 이유는 아이가 좀 크니 알겠다. 킥보드와 자전거 등등을 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간단한 간식까지 먹을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도 만날 수 있으니 금상첨화.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으로(?) 아이가 어느 정도 큰 후로는 봄마다 공원을 울부짖었다. 

누가? 내가. 

누구에게? 남편에게.

남편은 그때마다 공원을 갈 필요가 없다는 둥, 집 앞 놀이터 가면 된다는 둥, 그런 멋대가리 없는 소리만 늘어놓았고, 그땐 아직 아이가 탈 것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집 근처 놀이터로도 충분했기에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드디어! 말로만 듣던 그분이 우리 아이에게도 왔다. 

하원하고 나면 그렇게 킥보드를 타러 나가자고 조르는 거다. 

그래, 이제 때가 되었어. 이젠 공원에 가야만 해!


꼭, 벚꽃이 흩날려야 하니 늦은 봄은 안 되었다. 

마침 투표일이 4월 10일. 이 날이다. 그리하야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지난 주말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 


"우린, 공원에 갈 거야. 4월 10일에. 어차피 주말에 사전투표 할 거잖아?"

"사전투표를 왜 하는 건데, 4월 10일에 쉬려고 하는 거잖아."

"아니, 어차피 오빠는 맨날 쉬고 싶다고 하니까 이젠 안 들을 거야."

"맘대로 해라."


공원에 가면 꽃이 많이 떨어져 있을 테니 휴지심을 이용하여 꽃팔찌를 만들 수 있는 재료도 준비했고, 갔다 와서 소풍 소꿉놀이를 할 수 있는 도시락 종이접기도 준비했다. 

(어차피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거라 그냥 가볍게 준비한 거다.)


드디어, 오늘. 4월 10일! 

눈 뜨자마자 아이는 아빠에게 달려가 "아빠, 우리 공원 가요"를 외쳤고 난 그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아침 먹고 공원 가자는 남편의 말에 안도감을 느끼며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준비를 끝내니 11시가 좀 안 된 시간. 


"캠핑의자를 가져갈까, 돗자리를 가져갈까?"

"그냥 가. 어차피 1시간만 놀다 올 건데 뭐. 밖에 추워."

"그래...? 어쨌든 차에 돗자리는 있지?"

"차? 차를 왜 가져가? 걸어갈 건데?"

"무슨 소리야, 거길 어떻게 걸어가. 우린 율동공원을 갈 거야."

"거기까지 뭣 하러 가. 화랑공원 가. 거기는 근처 주차 자리 없으니까 걸어서 가. "

"그럼 자전거 타고 가자!"

"자전거? 바퀴에 바람 빠졌을 걸. 정비해야 해. 그냥 가. "


이 말을 끝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공원에 대한 기대감, 설렘, 즐거움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 난 급격히 이 모든 상황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아파트 앞 놀이터 가."


그리고 아파트 바로 앞 놀이터에 앉아 RC카를 운전하며 즐거워하는 남편과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어차피 여기 있을 거면 우리 둘 다 있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오후에는 내가 아이를 볼게, 지금은 나 다른 일 하러 간다"

라고 말한 후 카페로 도망을 왔다. 


2021년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던 계절에 처음으로 다 같이 율동공원을 갔었다. 반짝이는 햇살과 선선하게 불던 바람, 냇가에서 놀던 많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율동공원이 특별하게 좋았다기보다, 우리 가족이 함께 반짝이는 햇살아래 있던 장소라 좋았다.  


"아이가 크면 또 와야겠다. 저 냇가에서 같이 놀고 킥보드나 자전거도 타고 그래야지."

"그럼 나는 그냥 보고 웃어도 되나?"

"그래라, 내가 우리 아이 따라다니며 같이 킥보드 탈 테니까."


내가 그리던 풍경을 이루지 못해 서운한 걸까,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 남편의 모습에 서운한 걸까. 

어쨌든, 아직 우리는 같이 살고 있다. 

오늘은 내가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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