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현지인 집에 초대받기
따오청(稻城)은 영원한 샹그릴라,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불리는 야딩(亚丁)에 가기 위한 관문 같은 곳이다. 이전에는 가장 가까운 공항이 캉딩(康定)에 있었는데 야딩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따오청에도 공항이 생겼다. 따오청부터 야딩까지 90km는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승합차(빵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중국 정부가 셔틀버스를 만들어 관광객들은 그 버스로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다.
밤새 내린 눈에 온 세상이 새하얘졌다. 꽈배기라도 살 요량으로 나갔는데 문 연 가게가 거의 없다.
어젯밤 따오청에 도착해 급히 잡은 숙소는 전기가 안 나왔다. 큰 호텔은 자체 발전기가 있어 전기가 나온다기에 숙소를 옮겼는데 웬 걸… 물 한 잔 끓여마시고 나니 전기가 끊겼다. 전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더니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발전기를 돌릴 수 없다 한다. 전기가 나온다던 시간도 계속 미뤄졌다. 계속해서 바뀌는 말에 성질이 나 따지니 주인장은 적반하장으로 우리에게 나가라고 했다.
화가 난 우리는 그 길로 나와 다른 숙소를 찾으려다 곧장 야딩으로 떠나기로 했다. 길가에 늘어선 장족(티베탄) 기사들과 가격 흥정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정말 흥정이 싫다. 정찰제가 편하지 흥정은 매번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번도 다르지 않았다. 배낭을 들춰멘 우리는 좋은 먹잇감이었으리라. 포식자가 사냥감을 에워싸듯 우리를 둘러싼 기사들이 큰소리로 말하는데 머리가 아팠다. 서둘러 그네들의 얼굴을 살폈다. 이중에 누가 가장 선량하게 생겼을까?
모르겠다. 나는 지독히도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까.
키가 훤칠한 청년이 가격을 제시했다. 지금 출발해서 야딩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그의 말이 계속해서 바뀐다. 옆에서 편 들어주는 스님도 마찬가지로 사기꾼으로 보였다.
대안이 없었던 우리는 그 중 인상이 나았던 훤칠한 청년의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면서도 절대 속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때는 몰랐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와 그렇게 친해지고, 그렇게나 고마워하게 될 줄을.
그는 운전하기 어려운 구간을 지나면 칭찬 원하는 유치원생처럼 우리를 바라봤다. 길 가는 동네 할머니들을 차에 태워주는 모습을 보면서 건실한 동네 청년인데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싶었다. 같이 간 J는, 그가 길가의 강아지가 다치지 않게 돌아서 운전하는 것 보고 동물을 아끼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야딩 들어가는 매표소가 문을 닫았다. 오늘 산에 들어갈 수 없어서 숙소를 알아봐야 했는데 그가 말했다.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앞뒤 잴 것 없이 그러마고 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티베탄 집에서 자 볼 수 있겠는가?
빈 집에 따오껀(그의 이름이다)의 어린 딸이 혼자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지은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집에 우리가 있는 줄도 몰랐을텐데 주인보다 먼저 집에 들어와 있는 낯선 사람들을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살면서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반긴 적이 있을까? 정말로 감동이었다.
따오껀과 그의 아내는 한참을 난로가에서 요리했다. 어른거리는 촛불 사이로 보이는 가족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옛날 시골에서 정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챙겨주시던 것처럼 먹을 것을 계속 줬다. 그릇마다 정성스레 담아준 음식이 따뜻했다.
식사가 끝나고 옆방에 이부자리를 마련해줬다. 난방이 되지 않아 얼음처럼 추웠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잠들었다.
아, 정말로 오기를 잘했다. 나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