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괜찮아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아침만 해도 일출 보며 신나게 노래 부르며 가고 있었다. 차가 거의 없는 일직선 도로는 꿈결같았다.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정신이 몽롱했다. 그러다 앞 차가 정지한 건 줄 모르고 들이받았다. (앞 차의 브레이크등이 나가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저속으로 가다 부딪혔기 망정이지 쌩쌩 달리다 박았으면 훨씬 더 심하게 다치고 바이크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차를 들이받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더라? 슬로비디오처럼 쿵 땅에 떨어지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Are you okay?"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다친 줄도 모르고 괜찮다고 대답하고 어버버 하는 새 오른쪽 팔에서 강한 통증이 몰려왔다. 팔이 부러진 것 같았다. 오토바이와 짐은 내팽개치고 사람들이 잡아주는 릭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바이크와 짐은 뒤에서 달려오던 일행이 챙겨주었다.)
천만다행으로 사고가 난 지점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대형 병원이 있었다. 오토바이 여행하며 인적 없는 산길이나 시골길을 달린 적이 무척 많았는데 그럴 때 사고가 났으면 어땠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가까이에 큰 병원이 있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간호사들의 안내에 따라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골절은 아니지만 탈골이 됐고, 팔꿈치 뼈가 부서져 조각조각 났다고 했다. 수술 시간을 기다리며 몇 시간을 고통 속에 끙끙댔다. 수술이 끝나고 일어나니 창밖에 어둠이 깔렸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조금도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마취가 풀리며 몽롱한 가운데 간호사 얘들이 보였다. 시골 병원에 외국인 여자애가 온 게 신기했는지 서 너 명이 몰려와서는 웃고 떠들며 나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본다. ^^;
다치는 바람에 몰디브에 가려던 계획이 날아갔다. 다 나을 때까지 한 곳에 머무르며 진료를 받아야 했고 계획에도 없던 해안가 절벽마을 바르깔라에 6주간 머무르게 됐다.
솔직히 바르깔라는 시끌벅적한 고아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고아처럼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는 가게도 없었고, 깁스한 팔 때문에 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풍덩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바다가 가까웠다.
6주 동안 이곳에서 무얼 했더라?
매일 아침 우유와 계란, 토마토 등을 사다 토스트를 만들어 먹고, 생강차도 끓여마시고, 미드를 몰아보기도 하고, 영어 공부를 좀 하기도 했다. 팔이 쉽게 붓고, 흔들리면 아파서 많이 걷지는 못하고 숙소 주위를 가볍게 걸어 다니기도 했다.
아무리 장기 여행일지라도 6주는 꽤 긴 시간이다. 계획대로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시간을 6주나 허비한다는 것에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쉬어가라고 그랬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마음 한편에 '빨리빨리! 더!'라는 마음이 남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로,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려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바르깔라에서의 6주.
이곳에서 딱 한 번, 단 몇 초간 만났을 뿐인 푸른 눈의 마음 깊은 청년, 옆 방의 빅터 부부에게 한국 카레를 대접하고, 동방미인 차를 내려마시며 이야기 나눈 일.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화가 날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앞을 향해 달려가는데 나만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 같을 때 바르깔라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그냥… 그래도 되는 것 같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함이 차 오르고, 충전을 잘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멈춰있어도 긴 인생에 있어 별반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아등바등 애를 쓰든,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며 지내든 삶은 그저 흘러갈 뿐 거기에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기는 건 결국 내 마음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