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오토바이 여행

자유를 달리다

by 나라


오토바이 여행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 자유를 선물해 줬다. 바람과 흙먼지를 온몸으로 맞으며 달린 라다크와 잠무 카슈미르는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내가 다시 라다크를 간다 해도 이때만큼 자유롭고 신날 수 있을까?





20대 시절, 인도 여행을 함께 한 친구와 나는 여행 경험이 많았다. 나는 방학 때마다 배낭을 둘러메고 어디론가 떠났고, 친구는 여행을 좋아한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안 가본 곳이 없었다. 나름의 여행 방식과 패턴이 있던 우리는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로열 엔필드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왔다.


인도 오토바이 제조회사인 로열 엔필드 바이크는 전신이 군수 회사였던 만큼 군용 바이크스러운 디자인을 자랑한다. 클래식 바이크들의 표본으로 불리는 '불렛(Bullet)' 모델은 두두 두둥 기분 좋은 엔진음을 내며 인도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인도를 몇 개월씩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엔필드 바이크를 구입하고 여행이 끝나면 비이크를 팔고 떠난다. 따라서 바이크샵뿐만 아니라 게스트하우스 근처, 길가에서 ‘For Sale‘ 쪽지가 붙은 엔필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하리라! 바이크 여행하고 마지막에 팔고 인도를 떠나야지!


리시케시에서부터 바이크샵을 돌아다니며 중고가를 알아봤다. 당시 한국 돈으로 몇십만 원이면 중고 바이크를 구입할 수 있었다. 몇 차례의 고민과 비교 끝에 1991년도 산 350cc 은색 불렛을 50만 원 주고 구입했다. 검은색 500cc는 연식도 덜 되고 멋있어 보였지만 예산에 맞춰.


친구도 나도 오토바이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키가 커서인지 처음부터 능숙하게 잘 다뤘다. 반면 나는 키가 작아 바이크에 타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는커녕 어릴 때 자전거조차 타보지 않았던지라 코너링 때 무게 중심이 쏠리는 느낌이 익숙하지 않아서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우리는 오토바이 여행을 하게 되었고, 이전의 여행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언제 어디든,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 자유‘ 그 자체였다. 우리는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머물렀고, 마음이 내키면 떠났다. 동트기 전 출발해 바이크 타고 맞이하는 일출은 매일 봐도 경이로웠다. 아마 그때부터일 것이다. 길에서 몸으로 맞는 태양이 벅차서 더 이상 일출, 일몰 명소를 찾아다니지 않게 된 것은.


이전에 릭샤 왈라나 택시 드라이버는 세상 나쁜 사기꾼의 표본이었지만 바이크를 타는 순간부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스마트폰 지도와 네비가 없던 시절이라 길을 모를 때마다 릭샤 왈라들에게 물어봤다. 스스로의 교통수단이 있는 우리가 손님(혹은 호구)이 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말 친절히도 길을 알려줬다.


분명 불편한 점도 존재했다.


험지가 많고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움푹 파인 곳을 지나다 베어링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짐 캐리어가 끊어져 덜덜거렸고(수리점이 나올 때까지 운동화끈으로 동여매고 다녔다) 심할 때는 머플러도 떨어져 나갔는데 머플러가 떨어져 나가면 정말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잦은 고장 때문에 어느 도시건 제일 먼저 도착하면 하는 일은 미케닉을 찾는 일이었다. 번잡한 도시를 뺑뺑 돌며 “불렛 미케닉!”을 외치고 가까스로 수리 센터를 찾으면 서너 시간씩 기다리는 게 기본이었다. 그러다 보면 진이 다 빠져 얼른 숙소 찾아서 먼지로 뒤덮인 몸을 씻고 드러눕고 싶은 생각만 간절할 뿐 도시 구경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긴 여행이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매 순간이 아쉽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길.

그곳에서 만난, 동양인 여행자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큼지막한 눈의 인도인들, 바이크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도와주고 떠난 사람들, 매일 아침 10시 반 허름하기 짝이 없는 길거리 가게에서 홀짝홀짝 마시던 달달한 짜이, 부스스한 머리에 담요를 걸치고 함께 짜이를 마시던 트럭 운전사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시골길이 유명 사원이나 유적지보다 기억에 남고, 그때 들이마신 여름날의 뜨뜻미지근한 바람과 초록 풀내음이 이렇게나 그리워질 줄이야... 모든 게 아쉽고 그리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소재였는데 충분히 남기지 못한 아쉬움,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더 다가가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무엇보다, 걱정은 뒤로 미루고 더 신나도 좋았을 텐데. 마음껏 순간을 즐겨도 좋았을 텐데.


그 시절은 화양연화(花樣年華). 나의 찬란한 여름이었다.


인도 바이크 여행 - 북에서 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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