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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 Nov 27. 2024

여행을 풍성하게 만든 버킷 리스트

남들은 쓸데없다 할지라도

살면서 꼭 해 보고 싶은 일들을 버킷 리스트로 만들듯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여행하기를 즐긴다. 내가 만드는 버킷 리스트는 기준이 있다.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는 기억으로 남을만한 것들.


1.     가이드북 버리기


 핸드폰 본인 인증, 정보 찾기, 숙소, 교통편 예약, 구글맵 길 찾기가 너무도 당연한 요즘은 시도 자체가 어려울 것 같지만 내가 세계여행 하던 2008-2009년에는 가이드북과 종이 지도의 도움을 받아 여행했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대로 여행하고 싶지 않아서 치기 반, 호기 반으로 가이드북을 내던지고 여행했다.

결과는 정보 부족으로 인한 삽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이드북에 실리지 않았을 뿐인) 이름없는 작은 마을들을 지났고,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2.     마음에 드는 사람 따라 여행하기


 1번 '가이드북 버리기'의 연장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일정을 따라 여행하기로 했다. 인도 꼴까타(캘커타)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순수하고 유쾌한 동생을 만났다. 잠깐 보고 말 인연인 줄 알았던 우리는 네팔로 넘어가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까지 함께 했다.



3.     비가 내리면 떠나기


 인도는 6-9월이 우기이고, 10-3월이 건기이다. 건기 때 인도 여행을 하다 꼴까타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신부님은 봉사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주셨고, 같이 식사하고 음악을 들었다.

 갑자기 비가 후드득 내렸다.

'어! 비 온다!'

 비가 오면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지라 짐 싸들고 다음날 바로 꼴까타를 떠났다. 신부님은 농담으로 ‘봉사활동 더 안 하고 도망간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쩌겠는가! 다음 장이 펼쳐졌는데 뛰어들 수밖에.



4.     디지털 장비 사용하지 않기


 쉽게 만들고 쌓이는 이미지가 가볍게 느껴져서 필름카메라 두 대, 필름 몇 개만 가지고 갔다. (그나마 있던 카메라 한 대는 인도 야간버스에서 가방이 털리면서 다른 주인에게 갔다;;)

'디지털 장비 사용하지 않기'는 유일하게 후회된다. 의미 없다 여긴 풍경과 여행의 전 과정이 의미 있는데 그때는 기록의 가치를 몰랐다. 이후로는 무슨 일이 있든 일기와 사진으로 많이 남기려고 한다.



5.     히말라야에서 종이비행기 날리고 배 띄우기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나 보다. 색종이와 유성펜을 챙긴 것 보면. ABC 원정대 – ABC 트레킹을 함께 한 우리 다섯 명을 그렇게 불렀다. – 와 함께 걷다 하늘이 예쁜 곳에서는 소원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렸고, 강에서는 배를 접어 띄웠다. 마지막 날 밤에는 촛불 켜고 롤링 페이퍼를 썼다.

 이때 참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여행했구나.



6.     일본인 친구 사귀기


 일본 여행도 아니고 중동 여행 중이었는데 왜 ‘일본인 여행자와 친구 되기’ 리스트를 만들었을까?

 노리와 유코 부부와는 시리아인가 터키에서 처음 만났고 예루살렘에서 한 번 더 만났다. 그들은 서로에게 주는 결혼 선물로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노리와 유코는 지금은 회계사를 그만두고 차밭을 경작하고 있다.



7.     사막에서 달 보며 잠들기


 이집트 시와 사막에는 지프 타고 모래 언덕을 달려 일몰 본 뒤, 하룻밤 자고 오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신나게 샌드 보드 타고 온천 목욕을 했다. 그 큰 사막에는 우리 밖에 없었다. 나와 J 언니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다, 보는 사람도 없겠다 홀딱 벗었다. 그때 느낀 자유로움이란! 광활한 사막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고 서 있는데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을 느꼈다.

모래 위에 깔린 침낭을 끌어올렸다. 눈을 감았다 뜨면 커다란 보름달이 한 걸음 다가와 잘 자라고 인사를 건넸다.



8.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진 선물하기


 계기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모으던 아이의 표정이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4번 디지털 장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중에 사진기, 정확히는 필름이 없었다.

2014년 중국 쓰촨 여행부터는 여분의 카메라를 챙겨 만나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즉석 포토 프린터로 인화해 마을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하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 음악이든 지식이든 의술이든 여행하며 유무형의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좋아 보였는데 포토그래퍼인 나의 여행에는 사진으로 나누는 즐거움이 함께 한다.



9.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서 맛있는 커피 찾기


 자전거를 빌렸다. 길치인 나는 길 잃지 않을 만큼 신경 쓰며 무작정 달렸다. 그날의 미션은 맛있는 커피 마시고 돌아오기였다. 펍스트리트를 지나고, 복작거리는 중심가를 지나고, 공사판을 지나니 한가로운 시골길이 나왔다. 누런 태양과 들판, 흙먼지, 간간이 보이는 마을.

오가며 본 커피숍에 들어갔다. 가게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주인장의 수줍은 미소가 친절해 보였다. 커피 한 잔 주문해 들이키자 카페인과 달달함이 충족된다.

오늘 미션 성공이다.



10.  초원을 달리기


 이건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몽골에 가보지 않았다. 내몽골에 가 본 적이 있어서 어렴풋이 상상해 보지만 중국 색깔이 빠진 초원과 사막이 궁금하다. 몽골에 가서 말을 타고 달리는 건 언제 해볼 수 있으려나?


나를 미소 짓게 하는 리스트를 만들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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