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 시간 속에 있었음을 기억해
“이번에 한국 여행을 하려고 해. 가족, 친구들과 함께 갈 건데 시간 되면 얼굴 보자.”
말레이시아 친구인 셍홍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와는 2008년 세계여행 때 시리아에서 만났다. 솔직히 그의 첫인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일본 친구인 유카와 여행 중이었고, 나는 나대로 여행 메이트가 있어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인사 나눈 것이 다였다.
여행 루트라는 것이 특별히 새로운 곳에 가는 게 아니면 결국은 겹치기 마련이다. 그와 나의 루트도 시리아부터 요르단, 이집트까지 계속 겹쳤다. 관광지에서, 게스트하우스에서, 국경에서 몇 번 마주치는 사이 나, 셍홍, J와 M 동갑내기 네 명은 일행이 되어 같이 여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부터 카이로, 룩소르, 아스완까지 위대한 유적과 유물을 둘러봤고, 시와 사막에서 달을 보며 모래 위에서 잠들었다.
친구란 건 정말 좋은 것이었다. 말이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고, 영어 실력이 부족해도 실수에 대한 걱정 없이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다. 길 위에서 쌓이는 시간만큼 저 사람은 나를 '평가'하지 않으리라는 신뢰가 두터워졌나 보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아스완까지 함께 여행하고 그는 네팔로, 나는 아프리카로 가야 했다. 하지만 산에 몹시도 가고 싶었던 나는 아프리카를 지나 남미까지 여행하기로 한 계획을 뒤엎고 카트만두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셍홍, 나도 네팔에 가려고. 다시 히말라야에 가고 싶어 졌어.”
“정말? 그러면 같이 서킷 하면 되겠다!”
우리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며 산에서 16일을 함께 더 있었다.
셍홍이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 왔을 때 히말라야 트레킹 때 입었던 하늘색 플리스 쟈켓을 입은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의 여행은 끝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여행 때 입던 옷을 아직까지 입고 있다는 것이 마치 아직 다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혼자 안도했다.
오랫동안 여행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다. 굵직하게 써 내려간 여행의 시간을 같이 추억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외롭기도 하다. 셍홍과는 찬란한 시간의 조각을 함께했고, 그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우리가 만나지 않아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함께 한 시간과 인연에 감사해. 나는 절대 못 잊을 거야."
나는 안다. 그가 잊지 못하리라 한 것은 함께 한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