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바이크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
한국에서도 라이더(바이크 타는 사람들)끼리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라이딩하다 마주치면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손 인사를 건네거나 고갯짓을 한다. 이는 서로의 안전한 라이딩을 기원하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길 위를 자유롭게 달리는 라이더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의 표시이다.
내가 바이크를 처음 탄 건 2008년 인도 여행 때이다. 바이크 여행을 함께 하던 친구와 나는 땅 끝 깐야꾸마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남쪽 시골 마을 어딘가에서 프랑스 커플 이브와 프랑수와즈를 만났다. 그들은 인도 여행을 마치고 다른 나라로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똑같이 바이크 타고 여행한다는 동질감에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오른편에 버스가 있었는데 타타 트럭이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거야. 난감했지. 피할 공간이 하나도 없었거든. 결국 오토바이가 슬립됐고 프랑수와즈는 땅바닥을 구르고 나는 트럭 밑으로 들어갔어.”
이브의 무용담에 우리도 질세라 입담을 펼쳤다.
“라자스탄 지역을 한창 달리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어. 뒷바퀴가 펑크가 난 거였어. 바이크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컨트롤이 안되더라고. 곧 넘어질 걸 아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거 있지?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나뒹구는데 사방에서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어. 까진 상처 봐주고, 바이크도 세워주고. 정말 고마웠어. 인도 사람들 인심 좋더라고.”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뻔한 순간들을 깔깔대며 이야기하고, 길에서 온몸으로 배운 노하우를 주고 받았다. 당시는 스마트폰 지도앱이 없던 시절이었다. 길을 어떻게 찾냐는 물음에
"해를 보고 찾아.”
실제로 우리는 인적 드문 곳을 달릴 때는 태양과 그림자를 보고 방향을 찾곤 했다.
이브의 바이크는 혼다 제품이었고, 우리는 로열 엔필드 바이크를 중고로 한화 50만원에 구입해 타고 있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보호 안경 쓴 자국이 또렷한 눈 주위만 빼고 얼굴에는 그을음이, 온몸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비싼 오토바이를 타건, 저렴한 오토바이를 타건 인도에서 바이크 타면 시커멓게 거지꼴이 되는 건 매한가지라 서로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렸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아이처럼 맑은 표정을 하고 세계를 누비는 두 사람이 멋있어서 나도 저렇게 나이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칠년쯤 지나 이브와 프랑수와즈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다. 나와 헤어진 이후로도 둘은 계속해서 여행을 했고, 긴 여행의 끝에 이제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집에 돌아와보니 손주가 태어나 있었는데 이 또한 여행처럼 '어메이징한 모험'이라고 했다.
바이크로 전 세계를 여행할 거라고 말했는데 정말로 세상의 많은 길을 가 봤구나.
그리고 이제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삶을 여행하겠구나..
2018년 이브와 프랑수와즈가 바이크 타고 러시아,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중국에 가는 바람에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다.
어느 곳에 있든 그 둘은 늘 멋질 것 같다.
나 또한 다시 길 위를 달리는 꿈을 꾸며 오늘 하루를 꽉 차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