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시작하면서

by 나라

대학원 때였다. 친구가 아버지가 쓰시던 필름 카메라를 가져왔다. 미놀타 X350이었다. 초점 맞추는 법, 노출 맞추는 법을 간단히 배우고 셔터를 눌렀는데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문자가 됐든 이미지가 됐든.


어릴 때 할아버지댁에 다녀오는 길이면 매번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머리카락이 새하얀 할아버지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꼼짝도 않고 서 계셨다. 차창 너머로 할아버지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 장면은 절대 잊고 싶지 않다고. 아마 그때 손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찍었을 것이다. 그러니 카메라를 손에 쥐었을 때 신세계가 열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보던 풍경들이 달리 보였다.


아, 여기에 작은 풀이 자라고 있었구나. 그림자가 수놓은 그림은 이렇구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졌고, 그게 좋아서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친구들 사진을 찍어주고 인화해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 렌즈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담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진을 찍고 현상소에 맡기고 나면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해서 기다리는 시간조차 설렜고, 초점이 나가거나 의도한 것과 다른 사진이 나올 때는 왜 그런지 알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며 공부하게 됐다.


사진 모임도 몇 군데 찾아가봤다. 사진을 매개로 한 친목 위주의 곳들이었다. 내가 바란 것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사진에 대한 궁금증을 좀 더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접근해서 알고 싶었나보다.


흑백 필름으로도 찍게 됐다. 암실 작업이 사진의 반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영상 매체에서 보던 빨간 등이 켜진 그 암실이 생각만 해도 설렸다. 흑백 필름 현상을 가르쳐주시는 사진 작가님을 찾아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암실 작업은 마치 명상 같았다. 어차피 깜깜하기는 마찬가지인데도 밤이 되어야 작업이 잘됐다. 깊은 밤 홀로 암실에 들어서, 가장 딱 맞는 상태를 인화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흑과 백 사이를 더듬는 일은 수행하는 것 같았다. 당시 작업실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는데, 비 오는 밤이면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너무나 황홀했다. 동이 터오는 게 아쉬울 정도로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그때부터였다. 카메라가 아니라 사진에 집중하게 된 것이. 작가님께 배우고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사진에 대한 궁금증과 답답함이 조금씩 해갈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그 답을 찾고 싶어서 좋은 사진을 찍었다고 평가되는 수많은 작가들의 사진집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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