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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 Jun 29. 2024

지리산에서 주웠어

나의 지리산 이야기

 




 날씨가 문제였다. 성삼재행 야간 버스가 출발할 때도 비가 왔지만 산에는 비가 오지 않기 바라며 떠났다. 버스에서 내리니 천둥번개까지 동반한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산에 발 한 번 못 들이고 이대로 집에 돌아가야 하나?


 발만 동동거리며 있는 내게 선배님은 산에서는 날씨가 오락가락하니까 조금 있으면 갤 거라고, 같이 주먹밥 먹으면서 기다려보자고 말씀하셨다. “새벽에 주먹밥 만들면서 양이 좀 많다 싶었는데 아가씨 만나려고 그랬나 보네.”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같은 버스에 등산 고수들이 타고 있던 거다. 40년 가까이 산 탄 엄마뻘, 이모뻘 나이의 산 선배님들은 이 정도 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고 나는 1박 2일 산행 내내 선배들을 쫓아다녔다.


 

 산타다 커피 마시며 쉴 때, 대피소에서 식사할 때 언니들은 내가 모르는 오래전 산 이야기를 해줬다.


 반야봉에서 텐트 치고 자다 쏟아져 내리는 별빛에 마음을 빼앗긴 이야기,

 대피소가 산장이던 시절 사람이 너무 많아 신발 베고 잔 이야기,

 나는 변하지만 산은 늘 그대로라 언제든 너그러이 품어준다는 이야기.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 또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 그때 그 순간을 함께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중히 여기는 걸 소중히 여기는 이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걸까? 지리산을 사랑하는 언니들 보기에 똑같이 이곳을 사랑하는 내가 예뻐 보였나 보다. 무릎도 시원치 않은데 비 내리는 날 밤에 여자 혼자 지리산에 가는 건 정말 산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리산이 맺어준 인연은 이후 한 달에 두 번씩의 동반 산행과 네팔 코프라 단다 트레킹으로 이어졌다. 언니는 나를 같이 산타는 분들에게 소개해주면서


 “지리산에서 주웠어.”

  

라고 했다.


 7-8월에는 45일간 네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도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의 인연을 만들어준 지리산의 마스코트 반달이는 이젠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 함께 한다.




 지리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주는가 보다. 지난해 여름 지리산에 간 건 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나 또한 지리산에서 보석 같은 인연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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