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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여우 Oct 24. 2024

명절과 제삿날 그리움에 울다

엄마의 부재, 상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다섯달도 되지 않았다.

아직도 엄마가 집이나  병원에 계신 것 같다.

가끔 출근길에 엄마의 부재를 느낄 때면 사무치게 그립다.


추석을 지내고 얼마 후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면서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울컥하여 퇴근길 주차장 차 안에서 엉엉 목놓아 울었다.


엄마는 명절이나 제사 전부터 재료를 사다 날르며 김치를 담그고 떡과 식혜, 밑반찬을 하시고  전을 부치셨다.

9남매의 맏며느리인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혼자서 그 일을 하셨다.

명이나 되는 작은 엄마들은  일하러 오는 거라기보다 삼시세끼 밥을 차려줘야 하는 손님이었다.

당신이 시집살이를 하신 터라 며느리에게는 그 일을 넘겨주려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당신의 노고로 할 수 있는 한 혼자 다 감내하고자 하셨다.

그게 안될 때는 맏딸이고 기까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나를 부르셨다.

엄마가 병으로 당신 몸을 제대로 못 움직이더라도 악착같이 그 일을 하셨다.

무슨 고행을 하는 수도자처럼.


"엄마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무슨 음식이야.

하지 말라고 좀. 엄마는 엄마 몸 생각만 해. 그러다가 넘어져서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사 먹는 건 맛이 없잖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고. 게다가 비싸고. 식구가 많은데

그리고 산걸  어떻게 제사상에 올리니.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그리고 제사음식만으로  밥을 못 먹어. 밥 먹을 식구가 몇 명인데  많이 해야지. 달랑 제사음식만  어떻게 주니?"


"누가 먹으러 와. 제사 지내러 오는 거지. 조금만 하고. 사서 해도 괜찮아. 요즘 산 음식도 맛있어. 깨끗하게  만들어서 걱정할 필요 없어. 뭐 하러 자꾸 힘들게 고생하는 거야 "


이렇게 매번 티격태격했다.

파킨슨 병인 엄마는 몸 떨리는 걸 제어하지 못했고 보행이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리보다 팔은 그래도 잘 움직인다는 거였다.

엄마는 골도공증도 심해 넘어지면 골절이었다.

몇 번 골절을 당해서 고생을 했기에 우리는 항상 노심초사했다.

그래도 엄마는 제사와 명절을 안감힘을 쓰면서 지내시려고 했다.

그런 엄마가 하늘로 여행 가시고 제삿밥을 얻어드시는 신세가 되셨다.


첫 추석

나는 내 집의 명절 음식을 하면서 넉넉하게 준비해 아버지 집으로 가지고 갔다.

혼자서 제사상을 차릴 올케도 딱해 보였다.

올케는 요즘 신세대답게 제사상을 맞췄다.

춤 제사음식이 냉장고에 가득했다.

반찬이 모자라면 가져간 음식으로 하라고 일러두며 집에 왔다.

음식은 20명이 먹기에 턱 없이 부족해 보였다.

내가 가져간 음식까지 먹으면 얼추 될 거 같았다.


그리고 제사

주말인 데다가 아버지가 와서 도와주라고 며칠 전부터 부탁을 하셨기에 갔다.

올케는 이번에도  당연히 모든 음식을 사 왔다.

탕과 밥, 적만 집에서 하는 걸로 하고 일체 다른 반찬은 하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다.

순간 나는 슬픔이 밀려왔다.

이렇게 제삿날 편하게 할  수 있는 걸 엄마는 뭘 그리 악착같이 아픈 몸을 이끌고 하셨는지 엄마의 고단함이 속상하고 화가 났다.

식구들 먹이고 싶어서 반찬을 더 만드는 수고로움에 담긴 정성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당신은 힘들어도 당신 손으로 따뜻하게 수도하는 마음으로 하신 그 음식에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엄마 표정이 떠올랐고 그 사랑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근 십 년을 파킨슨으로 고생하시다가 떠나신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줄걸.


제기를 닦고 설거지를 하면서 엄마의 잔소리도 그리웠다.

남은 음식 봉지마다 싸놓고 가져가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엄마는 당신 손으로 음식을 하면서 제사를 지내셨지만 당신은 고생만 하셨다.

엄마는 사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엄마 49제 때도 나와 여동생은 엄마 사드시는 거 안 좋아하셨고 엄마 병원에서 드시고 싶어 하셨던 음식,  평소 좋아하셨던 걸로 지내고 싶다고 해서 우리 딸들이 제사상을 차렸다.

그러면서 난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그런 마음으로 제사상을 차리신 거구나.

그런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줄걸.

조금 존중해 주고 타협해서 엄마가 편하게 할 수 있게 할걸.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의 정성스러운 밥상이 그립다.

엄마의 음식이 그립다.


난 가끔 울컥하다가 한번씩 서럽게 목놓아 운다.

엄마의 삶이 아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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