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나러 갔습니다
엄마를 만나는 장소의 변화
엄마를 만나러 갔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그리웠습니다.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을 동생과 함께 했습니다.
엄마는 납골당에 계십니다.
평소에 좋아하셨던 떡과 옥수수, 찐빵, 음료수를 엄마 앞에 차렸습니다.
'엄마 앞이 확 트여서 답답하지는 않겠지 하며 엄마 잘 지내셨어?'
'이제 거기서는 아프지 않아?'라고 물었습니다.
'엄마가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우리 사는 거 봐주셨으면 좋겠어.'
집에서 차가 안 밀리면 30분 거리에 있지만 몇 번을 생각하다 오늘에서야 갔습니다.
집에 계실 때는 집으로 마지막 세 달은 병원으로 갔는데 이제는 엄마를 만나려면 납골당 묘지로 가야 합니다.
엄마가 납골당으로 가신지 다섯 달.
추석에 엄마를 보러 갔었데도 엄마가 자꾸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가시고 나니 엄마의 빈자리가 더없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9남매의 맏며느리 역할을 하시느라 고생하시고
어려운 살림살이에 소같이 일만 하셨던 엄마가 맘이 아팠습니다.
어린 시절엔 엄마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밖에 나가길 좋아하고 술 좋아하시고 일하는 걸 싫어하시는 아버지 대신 넉넉히 지 않은 집안의 맏며느리로 억척스럽게 일하는 모습이 좋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내 눈에 들어온 건 결혼하면서 시어머니와 살게 된 나의 결혼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엄마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정하지 않은 남편, 살갑지 않은 자식들
엄마는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그렇게 힘든 데 어떻게 살아오셨어?'라고 물으면 엄마는 '너희들 때문에 살았지.' 하셨습니다.
엄마가 아파서 힘들어하실 때 '엄마 좋았던 날 생각해 봐.'
그렇게 말하면 '좋은 날이 뭐가 있었어 힘들기만 했는데.'
그렇게 얘기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 앞에 죄인이었습니다
엄마나 살면서 좀 기쁘게 해 드릴걸.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가시는 마지막 말씀도 내가 고생하는 게 너만 생각하면 안쓰럽다며 오직 자식만 걱정하는 엄마였습니다.
그때도 '엄마는 엄마 생각만 해.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 가 계신 곳에서는 엄마만 생각하면서 편하게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엄마 앞에서 '엄마, 엄마 인생이 좋은 날이 있었나?'라고 물었습니다.
엄마의 삶의 무게가 무척 컸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돌아가시기 전에는 애써 외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미안함이 오늘 또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삶보다 자식들을 더없이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엄마
소처럼 일하셨던 엄마
항상 옆에 계실 것 같았던 엄마는 곁에 안 계십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딸들이랑 놀러 가고 즐겁게 지냈을 텐데.
엄마는 근 10년을 병상에 누워 계시다가 가시니 그런 추억도 없이 마지막을 허망하게 보내드려 그립기만 합니다.
동생과 엄마 묘 앞에서 한바탕 울고 얘기했습니다.
엄마를 추억했습니다.
엄마를 같이 추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생이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같이 보고픔을 공유할 수 있으니 덜 외롭습니다.
엄마도 우리들이 당신 자식들이 같아 앉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시겠지요.
살아생전 우리들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흐뭇해하셨는데
지금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계시겠지요?
엄마 이제 갈게
엄마 우리 잘 살고 있어.
엄마 잘 지켜봐 줘.
그리고 손주들이 엄마 기억하도록 할게.
엄마 또 올게
엄마 잘 계셔
엄마, 엄마 안녕